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를 잇는 소울 푸드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를 잇는 소울 푸드
  • 김봉건
    김봉건
  • 승인 2019.02.1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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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가족: 라멘샵'

유명한 라멘집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어머니와 사별한 이후 술에 절어 지내오고 있었다. 무슨 연유에서인지 자책하지 않는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마사토의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고 만다. 허망했다.

유품을 정리하던 마사토는 어머니의 생전 기록이 적혀있는 수첩을 발견하게 된다. 아버지는 라멘의 대가였고, 어머니는 싱가포르 음식의 대가였다. 그러니까 두 사람 사이에는 모종의 특별한 이야기가 감춰져 있었다. 부모님만의 특별한 삶이 궁금해진 마사토는 결국 일본 내 모든 걸 정리하고 어릴 적 추억이 깃든 어머니의 고향 싱가포르로 떠난다.

싱가포르에 도착한 마사토,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지만 온라인상에서 알고 지내온 싱가포르 출신 음식 전문 블로거 미키를 통해 도움을 청해보기로 한다. 미키 덕분에 유년 시절을 부모님과 싱가포르에서 지냈던 추억을 떠올리면서 과거 머무르던 장소를 일일이 찾아다닐 수 있었고, 곳곳에서 싱가포르의 전통 음식을 맛보면서 감회에 빠져든 마사토다.

특별히 어릴 적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자주 들렀던 음식점의 싱가포르 전통요리 ‘바쿠테’에 대한 기억은 너무도 강렬한 것이었다. 그는 싱가포르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바쿠테 전문점을 모두 돌아다니면서 어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리기 위해 노력한다. 카즈오 삼촌을 만나게 된 건 바로 이즈음이다.

ⓒ(주)팝엔터테인먼트

마사토의 어머니는 싱가포르인이었다. 일본인인 아버지가 싱가포르에서 생활하는 동안 두 사람 사이의 인연이 싹튼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은 힘든 나날이었다. 어머니의 어머니, 그러니까 외할머니 때문이다. 그녀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교제를 극구 반대했다. 아득했던 그들의 삶을 돌아보면서 마사토는 바쿠테야 말로 어머니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들어있는 음식임을 직감하게 된다.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의 상흔은 수십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아물 줄을 모른다. 아니 영원히 낫지 않을 상처라면 차라리 이를 보듬은 채 살아가는 게 정답일지도 모른다. 당시 전쟁의 참상을 몸소 겪은 데다 직접적인 피해자이기도 했던 마사토의 할머니는 이러한 아픈 과거로 인해 일본인과 결혼한다는 딸을 극구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에는 어느 누구보다 진정성이 묻어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할머니는 이러한 연유로 사위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는다. 딸과도 의절하고 만다.

마사토는 아버지가 왜 그토록 힘들어했으며, 자책감에 시달려야 했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왜 어머니와 할머니의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인지 이제야 깨닫게 됐다. 딸이 세상을 등진 뒤에도 할머니의 마음은 돌아올 줄을 몰랐다. 몹시도 차가웠다. 그만큼 상처가 깊다는 의미다. 할머니의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기 위해 마사토가 나섰다. 그가 선택한 방식은 음식이었다. 그것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영혼이 깃든 음식 말이다. 아버지의 라멘과 어머니의 바쿠테를 융합하는 새로운 소울 푸드를 시도했다. 마사토의 진심은 통할까?

이 영화 ‘우리가족: 라멘샵’에서는 음식이 사람과 사람을 잇는 훌륭한 매개임을 입증해 보인다. 음식을 통해 사람 사이의 갈등을 해결해주며, 때로는 용서도 구할 수 있노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영상은 자극적이지 않으며, 화면 전환 역시 결코 빠르지 않다. 극은 천천히 전개되지만 꾸준히 앞으로 나아간다. 덕분에 이야기는 잔잔하면서도 제법 힘이 실려 있다. 일본 영화의 특징이 온전히 담겨있는 작품이다.

세상 모든 음식에는 다양한 정서가 녹아들어있기 마련이다. 민족적 색채가 담겨있는가 하면, 삶의 양태와 풍습 등이 배어있기도 하다. 만드는 이의 노고와 손맛도 들어있다. 덕분에 음식을 매개로 전달되는 따스함의 정서에는 진정성이 깃들어 있곤 한다. 갈등과 오해를 푸는 매개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는 건 바로 이러한 요소 때문이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영혼이 깃든 대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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