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기여가 동등한 대우를 받는 세상
모든 기여가 동등한 대우를 받는 세상
  • 박다빈
    박다빈
  • 승인 2019.02.12 11: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카쿠코 매거진 『산문』

   세상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의 기여가 있다. 어떤 사람은 눈에 잘 보이는 기여를 하면서 자기 인생을 꾸려 나가고, 어떤 사람은 명확하게 인식되지 않는 기여나 모양이 아예 없는 기여를 하면서 자기 인생을 꾸려 나간다. 눈에 보이는 기여 가운데 흔한 것은 몸을 고쳐 주는 일, 물건을 만드는 일이 있고,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기여 가운데 흔한 것은 예술, 상담이 있다. 

   내가 보기에 지금 세상은 눈에 보이는 기여를 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윤택한 삶을 누리는 것 같다. 어찌 됐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결과물을 내놓는 직업이 그렇지 않은 직업에 비해 인정을 많이 받는 듯하다는 것이다.

   의사의 기여와 예술가의 기여 중에 뭐가 더 가치 있을까? 각자가 각자의 최선을 다해 자신의 재능을 펼친다는 점에서, 나는 이들이 동등한 가치 기여를 하며 산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의사도 필요로 하고 예술가도 필요로 한다. 물리적인 효용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예술가의 존재 가치는 0일지 모르겠으나, 균형 잡힌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효용과 비물리적인 효용이 더불어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돈이라는 것이 있고, 직업마다 평균적으로 벌어들일 수 있는 소득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똑같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을 때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있고 덜 벌거나 못 버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하여 자연스럽게 직업의 귀천이 생긴다. 

   요즘 세상에 직업의 귀천이 어디 있냐고 하는 말은 공허하다. 직업에는 엄연한 귀천이 있다. 엄청나게. 직업군의 차이는 계층 차이를 낳는다. 직업은 곧 신분이다.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한국말도 아직 제대로 못하는 애가 영어 유치원에 보내지는 것, 미친 입시 제도보다 더 미쳐 가는 학생들이 수도 없이 생기는 것. 그것은 이 시대가 그 어느 때보다 지독한 신분 제도 속에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신분 제도보다 노골적이지 않을 뿐이지. 아니, 그만큼 노골적인가. 돈 많은 집안에서 교육 빵빵하게 받은 아이들이 의사, 검사, 판사 돼서 부모처럼 떵떵거리며 살고, 돈 없는 집안에서 변변한 교육을 못 받고 자란 아이들이 소위 상류층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살던 대로 사는 것을 보면. 

   인생에서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이 세상에서의 금전적인 궁핍은 많은 순간 기본권의 박탈을 일으킨다. 돈 없으면 사람답게 살기 힘들다. 그러니 다들 '더 나은' 직업을 갖겠다고 혈안인 것이다. 사회 구조가 그러니까. 

   최근 입시 광풍에 대해 다룬 드라마가 인기리에 종영되었는데(나는 그걸 보지 않아서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드라마를 보며 우리나라의 정신 나간 입시 제도를 비판했다. 그런데 정말로 비판 받아야 할 대상은 따로 있지 않을까. 문제의 뿌리.

   우리는 개개인의 고유한 가치가 각기 다른 값으로 매겨지는 세상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자기 자신의 고유함과 멀어진다. 겉보기에는 지금이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롭고 현명한 시대 같지만, 지금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궁핍하고 (강제로) 어리석어졌다. 자기 자신을 거의 보유하지 못하거나 아예 보유하지 못해서. 그것이 어찌 개인들의 잘못일 수 있을까.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는 삶을 가지겠다는 결단은 때로 내 삶의 기본적인 안전을 포기하겠다는 말과 맞닿아 있다. 나에게는 이런 세상이 정상이 아니다. 

   얼마 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을 서면으로 받았다. 나는 '나에게 더 나은 세상이란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거고, 행복의 기본은 평등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불행의 근간에는 결핍이 있다고 생각하고, 결핍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평등에서 온다고 생각하거든요.'라고 대답했다. 허무맹랑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모두가 자신의 기여에 최선을 다한다는 전제 하에) 나는 각자의 기여가 저마다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어야 세상이 진정으로 발전하고 번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타고난 천성도 다르고 가진 취향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대로 세상을 꾸려 나갈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질 때, 어쩌면 세상은 불세출의 풍요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후원하기

Fn투데이는 여러분의 후원금을 귀하게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호 : 파이낸스투데이
  •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사임당로 39
  • 등록번호 : 서울 아 00570 법인명 : (주)메이벅스 사업자등록번호 : 214-88-86677
  • 등록일 : 2008-05-01
  • 발행일 : 2008-05-01
  • 발행(편집)인 : 인세영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장인수
  • 본사긴급 연락처 : 02-583-8333 / 010-3797-3464
  • 법률고문: 유병두 변호사 (前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서울중앙지검 , 서울동부지검 부장검사)
  • 파이낸스투데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파이낸스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1@fntoday.co.kr
ND소프트 인신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