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덕의 등산재구성] (16) 경기고 산악부는 왜 자기를 라테르네(Laterane)라 부르는 걸까요?
[김진덕의 등산재구성] (16) 경기고 산악부는 왜 자기를 라테르네(Laterane)라 부르는 걸까요?
  • 김진덕
  • 승인 2019.01.30 21: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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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해방되던 해에 창립한 경기고 산악부를 스스로 '라테르네'라고 부른다. 영어 랜턴에 해당하는 독일어 Laterne를 말한다.

그들의 등반열정은 가없어 1952년 전쟁 중에 '라테르네'라는 명칭의 회보를 만드는데,  우리나라  산악회 최초의 회보라는 타이틀을 기록하게 된다.

그렇다면 당대 최고라고 하는 약관의 엘리트들이 왜 자기 모임을 라테르네라고 근사하게 불렀을까. 산행경력도 일천한 그들이 스스로 작명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혹시라도 다른 예를 차용한 것은 아닐까.

어제 밤늦게 책장앞에서 서성거리다가 '미야기현(宮城) 산악연맹 40주년 기념지'(1991년)을 꺼내어 짧은 일본어 실력으로 더듬어 보았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각급 시도연맹이 되겠는데, 번듯한 장정이 아니라 제본에 가깝다. 가맹단체를 보는데,

'중신전정 라테루네(ラテルネ) 산악회'라는 이름이 눈에 띤다. '1960년 창립했으며.... 라테루네는 랜턴에 해당하는 독일어이다.'라고 시작한다.

경기고보다 창립연도가 늦지만, 일본에서 산악회 이름에 라테르네를 붙인다는 걸 발견한 셈이다. 구글 검색을 해보고 싶어서 날이 새기만 기다렸다. 구글에서 'ラテルネ山岳会'로 검색해 보았더니 몇몇 예를 더 발견할 수 있다.

백산백색산악회의 소장자료 중에 1991년 창간호라면서 협채랜턴회(峽彩 Lantern)회가 1991년부터 발행한 회보 '라테르네'가 있다. 산악회 이름은 영어 랜턴을, 회보 이름은 독일어 라테르네로 한게 이채롭다. 라테르네라는 독일식 명칭이 일본 산악계에 통용되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일본 산악계의 한 축인 일본 근로자산악연맹의 치바현연맹 소속에 나리타 라테루네 산회가 있다.

양쪽에 랜턴에 불을 밝히고 있는 신석(新潟)랜턴회도 있다.

우리는 라테르네가 고유명사로 경기고 산악부만을 뜻하지만 일본은 보통명사로 여기는 듯 하다. 일제에도 라테루네 산악회라는 이름이 있었을지 아직 확인을 못했지만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런데 애시당초 라테르네가 산악회 이름으로 붙여진 건 아니다. 회보 명칭이었다가 산악회 이름으로 차용한 것인데, 그렇다면 또다른 가능성이 놓여져 있다.

등산잡지의 기사에 의하면 경기고 산악부가 라테르네로 불리게 된 계기는 이러하다.

경기고 산악부는 1945년 경기고 43회인 김석종과 2년 후배들이 주도했다. 그들은 '야유회 가는 분위기에서 학교에 산악부실을 만들고 등산 관련서적을 청계천서 구입해 암벽등반에 대한 본격 훈련을 실시했다.' 

전쟁이 터지면서 잠시 주춤했다가 다시 본격 등산에 나선 건 경기산악부 중심으로 서울대 공대 산악부를 창립하면서 만든 회보지 ‘라테르네’로 인해서였다. 경기산악부 회원들 동정과 산악소식과 등산지식을 쌓기 위해 52년 연회보를 창간했다. 이름을 놓고 고민하다 라테르네로 작명했다. 이 이름은 경기산악부 OB 이름으로 자동 정착됐다.

그들이 참고한 등산관련 서적 중에는 당시 지명도가 높았던 일본의 등산잡지 '산과 계곡'이 있었을 것이다.

산과 계곡 제 322호 목차 중에 바로 '라테르네'도 있다. 언젠가 우리 등산잡지 중에도 '랜턴'이라는 타이틀로 산악계 동정을 실었던 걸로 기억한다.

일제 때에  라테르네 산악회라는 이름의 산악회가 있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또는 같은 시기 일본 등산잡지나 산악회 회보 중에 '라테르네'라는 타이틀을 발견했을 수도 있다.

만약에 이 두가지 가능성이 없었다고 한다면, 경기고 산악부는 10대의 어린 친구이지만 최고의 엘리트답게 창의적이고 근사하게 명명을 했다고 할 수 있겠다. 라테르네. 나즉하게 읇조리기만 해도 등산의 낭만과 우정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온다.

이상 경기고 산악부, '라테르네'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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