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손맛이 그립다
어머니의 손맛이 그립다
  • 김봉건
    김봉건
  • 승인 2019.01.23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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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추운 계절, 밖에서 놀다 들어오면 꽁꽁 얼었던 손발이 녹으면서 몹시 괴로웠던 경험이 있다. 제 몸이 어는 줄도 모른 채 노는 데만 열중하느라 그런 것이었을 테고, 또 노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한동안 잊고 있던 추위가 온몸을 엄습해오면서 자연스레 따뜻한 것을 찾다보니 냉탕과 온탕을 오고 간 것이리라.

그러니까 시기적으로 봤을 땐 딱 요맘때였던 것 같다. 한겨울 놀이로는 구슬치기와 팽이치기만한 게 없었다. 당시엔 이게 최고였다.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구슬치기를 하다보면 손이 얼다 못해 아예 부르트기를 수차례 반복하고 심지어 곪아터지기까지 한다. 그래도 그 당시엔 제 몸 상하는 줄 모르고 놀이 삼매경에 푹 빠졌던 것 같다.

집에 돌아와 언 손을 급작스레 녹이다보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극과 극을 오가는 상태변화 속에서 내 몸은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해한다. 허기는 또 왜 그렇게 심했던 것인지. 그때 울 엄니가 두둥 하고 나타나신다. 무언가를 들고서 말이다. 달짝지근한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한다. 무얼까?

물론 냄새만으로도 어떤 음식인지 나는 척하니 알아맞힌다. 왜냐면 울 엄니표 궁중 떡볶이는 다른 곳에서 먹어보지 못한 엄니만의 손맛이 듬뿍 배어있기 때문이다. 설날 전이면 떡집에서 가래떡을 맞춰와 집 한쪽 구석에 고이 모셔놓곤 했는데, 이 가래떡이란 놈은 그야말로 요술쟁이였다.

길쭉길쭉 막 잘라 연탄불에 살짝 구운 뒤 설탕을 찍으면 그 맛은 정말 천하일품이다. 먹어본 사람만이 알 법한 종류의 것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얇게 썰어놓으면 언젠간 떡국이 되어 허기진 우리의 배를 채워주기도 한다. 그뿐 아니다. 최고의 간식 궁중 떡볶이도 바로 요 가래떡으로부터 출발한다. 떡국 떡 모양의 가래떡을 재료로 떡볶이를 만들 땐 고추장으로 만드는 일반 떡볶이보다 간장으로 조리하는 궁중 떡볶이가 제격이다.

아마도 울 엄니표 궁중 떡볶이에 입맛이 제대로 적응된 까닭에 떡국 떡 떡볶이 하면 응당 간장으로 조리하는 궁중 떡볶이를 떠올리게 되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 어릴 적 엄니의 손맛에 적응된 입맛은 훌쩍 성장한 지금에 와서도 변할 줄을 모른다. 가래떡만 보면 으레 간장으로 조린 궁중 떡볶이를 떠올리게 되고, 궁중 떡볶이를 보면 또 울 엄니가 절로 생각나니 말이다.

그런데 울 엄니 궁중 떡볶이 만드는 모습을 보니 힘 하나 안 들이고 그냥 대충 아무렇게나 조리하는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맛은 늘 한결같다. 손맛이란 바로 이런 것일까?

또 다시 겨울이다. 이젠 머리가 굵어져 어릴 적처럼 밖에서 무턱대고 손발을 드러내놓고 돌아다니지는 않는다. 제 몸 막 다뤘다가는 그 후폭풍이 어떤 고통을 치르게 하는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어느덧 이렇듯 성장했음에도, 이 계절, 특히 설날이 다가올 때면 자연스레 가래떡이 떠오르고, 이 가래떡은 또 다시 엄니의 손맛인 궁중 떡볶이를 연상하게 한다. 엄니의 손맛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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