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덕의 등산재구성] (12) 195,60년대. 행여 마천으로 지리산에 가셨거든....|
[김진덕의 등산재구성] (12) 195,60년대. 행여 마천으로 지리산에 가셨거든....|
  • 김진덕
  • 승인 2019.01.2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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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시인 이원규는 2003년 그 유명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을 불렀다. 그러나 2003년 지리산은 상처받은 상태였고, 아마도 그가 상상한 지리산은 196,70년대일 것이다. 1960년대, 행여  지리산을 가셨거든 그대는 이런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여기서 이런 모습이라 함은 영원한 지리산이 아니라, 그때 그시절 버스를 타고  지리산을 찾았을 때 보았을 사람 사는 모습을 말한다.

2002년 함양군에서 펴낸 '사진으로 본 함양의 어제와 오늘' 지금처럼 본격적인 인터넷시대나 SNS시대가 도래하기 전 수고로이 여러 사진을 모아낸 역작이다.

이 사진첩의 기본 포맷은 196,70년대와 2002년을 비교하는 것인데, 오늘은 '만약 그시절 함양으로 지리산을 올랐다면' 보았을 풍정으로 꾸며본다.

먼저 함양 터미널 주변을 보고, 마천으로 넘어가자. 그때 행여  지리산을 오시려거든^^ 함양 마천은 이런 모습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1960년대 함양 터미널의 모습. 덕창상회라는 간판이 또렷하고 자갈마당에 버스들이 몇몇 서있다. 경남쪽으로는 진주 마산에 이어 부산. 거창을 너머 대구쪽과 김천이었을테고. 고개너머 전라도로는 운봉과 남원 그리고 멀리는 광주까지 있었을 것 같다.

이 터미널을 이용하여 지리산에 간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고, 그때의 지리산을 보았으니 부럽다.

1980년대 시외버스 버스 터미널. 지금 보이는 이쪽은 경상도권과 서울권이고 건물 저쪽이 전라도권이 아닐까 추정해본다. 1980년대 이후 지리산을 오른 이들을 맞이한 곳은 이곳이다.

196,70년대 터미널 부근 모습. 당시는 어디라 할 것 없이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은 비슷하게 생겼고(!) 거리도 대부분 비슷했다.  뱀사골행 남원이나, 화엄사행 구례나 중산리의 남원이나 쌍계사의 하동이나, 이렇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1950년대 관공서 건물. 하나같이 이렇게 생겼다. 입구는 좁고 시옷자 형태의 지붕이 처져 있는 것 말이다. 면단위 관공서는 담벼락이 블록이 아니라 돌담이라는 차이가 있다.

이제 마천으로 넘어갑니다.

하단 설명에 1930년대 마천 5일장 풍경이라고 하여 눈이 번쩍 뜨였는데, 스캔을 떠보니 글쎄다. 미심쩍은 결정적인 이유는 촌부들의 뒷모습이 모두 단정하고, 그리고 검은고무신 흰고무신이라는 거.

고무신에 대해 더 조사해 보아야겠지만, 1930년대 산촌에까지 일반적이었으려나. 참고로 최초로 고무신을 신은 사람은 고종이고, 1940년대는 태평양전쟁이라 고무신이 사라졌다.

이 역시 1930년대라 하지만, 195,60년대가 아닐까 싶다. 마천 특산물이라 할 목공예품이 뒤에 있고, 동글동글한 건 박이 아니라 수박이 아닐까 싶은데...

1960년대 마천 파출소 모습. 위에서 말했다시피 읍내 관광서와 똑같다. 돌담인 것만 말고..그시절 지리산을 가려면 파출소에 신고하고 가야 했을지 모르겠다.

지금 이런 식의 관공서가 남아 있다면, 근대문화재가 될 것이다.

195,60년대 마천의 초등학교 모습. 이런 형태의 학교는 마천뿐 아니라 함양군에 소재한 어느 초등학교도 대동소이했다. 이런 형태의 초등학교는 분명 일제스타일이 아닐까 싶은데, 남아 있는데 있을까.

유홍준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1990년대 관공서표 건물을 조롱했지만,  1990년대 건물들을 다 없애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 건물도 곧 근현대 문화재가 될터이니 말이다. 그때는 비아냥이 진보스러웠고, 지금은 보존이 진보일 터이다.

 1984년 집중호우로 사라지기 전 추성교의 모습. 1980년대까지 혹여 칠선계곡을 갔다면 이런 다리를 건넜겠다.

1968년 김신조 일당이 내려오면서, 북한산 노적사쪽은 출입금지가 되었다. 이곳 지리산 골짜기에도 여파가 밀어닥쳐. 독가촌을 이주시켰다. 그때의 독가촌은 화전민하고는 다른 개념이었을 것이다. 마천면에서 자재를 이주하는 곳으로 옮기는 모습인데 그때의 마천은 이랬다.

이제 사찰의 모습을 보자.

1970년대 벽송사.

역시 1970년대 벽송사.

지금은 상상도 못할 모습이고, 저 모습은 아마 50년대나 60년대나 80년대까지 대체로 비슷했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 마천의 사찰 영원사.

한폭의 그림같다....~~~

시인 박원규가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을 불러 지리산의 기본 포맷이 되었다. 그러나 그 역시 어찌 이런 모습을 보았으려나. 그때 이 모습을 보신 이들.. 부러워라. 거듭 부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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