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주어진다면 <제주도 한달살기>
방학이 주어진다면 <제주도 한달살기>
  • 송이든
    송이든
  • 승인 2019.01.1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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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여자에겐 제대로 된 방학이 없다.

회사를 안 나가는 날도, 집안에서의 일거리들이 산재해 있다.

이불을 빨아 넣어야 하고, 삼시세끼 밥을 지어야 하고, 집안청소를 해야하고, 하루가 금방 저물고 만다. 그래서 제대로 된 24시간을 자신에게 할애하는 일이 어렵다. 

가끔 머리가 복잡해 혼자 낚시를 간다는 남편이 너무 부럽고 화가 났다. 화를 내는 나에게 그는 "너도 가면 되지?"라고 말하는데 남자들에게 그 간단한 일이 여자에게는 그리 쉽게 다가와주지 않는다. 내가 결혼 후 나의 자리보다 엄마의 자리, 아내의 자리, 며느리의 자리가 너무 무겁게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둘째치고라도 자식을 두고 맘 편하게 놀 수 없는 엄마의 자리때문이다. 그렇게 결혼으로 형성된 관계사슬이 오로지 날 위한 시간을 할애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혼자 쉽게 편하게 휴식을 즐길 수가 없다.

그래서 이해가 됐다. 그 예전 어머니의 행동들이

며칠 여행을 준비하는 엄마는 전날 무지 바쁘다. 자신이 없을 때 식구들 먹을 반찬과 국을 끓여 냉장고에 담아두느라 여념이 없다. 삐툴삐툴한 글씨로 여기저기 적어놓고 가느라 말이다.

그동안 우리가 이리 형편이 없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하물며 양말 넣어두는 거, 냉장고 밑에 뭐 있는지, 찬장안에 뭐가 있는지 읊어주느라 짜증나게 했던 날들이 말이다. 꼭 평생 다녀올 사람 굴었던 엄마의 마음이 꼭 이랬구나를 결혼하고 자식이 커가면서 새삼 느끼게 되는 엄마의 그 마음과 대면하게 되었다. 경험은 이래서 우리에게 간절하게 다가오는 것같다.

그때는 그랬다. 아니, 엄마 없으면 짜장면을 시켜 먹어도 되는데, 저 난리일까 싶었는데 그게 주부로, 엄마로 살다보니 자신마저 놓을 수 없는 자리로 인해 생긴  미련을 나도 떨고 있는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 예전에 드라마에서  며느리, 엄마, 아내의 자리에 있던 그녀가 50이 넘은 나이에 독립을 하겠다고 한다. 휴가가 필요하면 며칠 쉬고 오라고, 여행이 필요하면 보내줄테니 다녀오면 되지 혼자 방을 따로 얻어 나가 살겠다는 게 말이 되냐고 가족들은 반감을 표시한다.

그러나 그녀는 휴가나 여행이 아닌 자신의 자리를 내려놓고 싶은 것이다. 가족들을 향한 살아가는 해바라기같은 삶속에서 나오고 싶은 것이다.

시부모 모시고 사느라 아침일찍 일어나 밥을 짓고, 뭘 요리해야 할지 전전긍긍하고 산 삶, 자식들 먹이느라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도 잃어버린 그 속에서 정작 자신의 자리가 없는 것 같은 서글픔도 한몫 했을 것이다. 그러다 거울을 보니 이미 백발이 희끗희끗해진 모습인 된 사람이 서 있다.

좋아하는 책 한번 실컷 편하게 읽어 본 적 없고, 끼니걱정에 친구들이랑 실컷 수다 떨어보지 못하고 달려온 자리에는 엄마고, 아내고, 며느리만 있다.

누군가를 계속 챙겨주어야 하는 자리,  당연히 받는 것에만 익숙해진 이기적인 존재들,

여자는 만들어진 의식속에서 자신보다 자리로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자리를 내려놓고 온전히 자신만을 향한 자유를 선언하고 독립을 하고 싶은 그녀의 외침, 숨 좀 쉬고 싶다는 그녀의 바램에 공감이 갔다.

혼자 살고 싶다는 말이  어떤 느낌인지 알것 같았기 때문이다.

자식을 향한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는 엄마이기 때문이고, 시부모가 가라고 맘편하게 즐길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아침에 늦잠을 자도 되고, 먹기 싫으면 안먹어도 되고, 국없이 물에 말아 먹어도 되고, 누구 눈치없이 자유의사로 온전히 자신을 가지고 싶은 것이다. 친구만나 술 마시고 밤새 수다 떨다 들어와도 눈치볼 것 없고, 다른 사람 뒷바라지 하느라 종종 거리지 않아도 되고 말이다.

하루종일 씻지 않고 온종일 방에서 뒹글뒹글거려도 보고, 혼자 우아하게 음악감상도 하고, 낮잠자고 싶으면 자는 그런 삶이 가지고 싶었을 것이다. 그녀의 독립은 여자라면 다 꿈꾸는 삶이 아니었을까?

요즘은 남편들이 집안일도 도와주고 애도 봐준다고 하지만 그게 여자에게 온전한 자유를 주는 건 아니다.

 방학이라 함은 보통 한달은 주어지는 게 아닌가?

요즘은 한달살기로 숙소를 빌려주는 곳이 많다고 들었다. 나도 자리가 주는 부담감 내려놓고 혼자 조용히 한달간 나만의 삶을 살고 싶다.

내게 방학이 주어진다면, 정말 그누구의 누구도 아닌 바다에 낚시대 던져놓고 세월아 네월아 자신안의 흐름에 집중하고, 자신안의 감정에 충실하여 끼니걱정, 자식걱정, 가족걱정 없이 나만의 온전한 자유를 가지고 싶다.

누구와 막 어울려 놀다오면 좋기도 하지만  그 무리속에 같이 어울려 노느라 내꺼를 온전히 못 누리고 올 때가 많다.

그래서 방학이 주어지면 명상이나 산책으로 고요하게 올레길을 따라 걷고 싶고, 혼자 숙소 베란다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밤 늦게까지 일몰도 지켜보고 싶고, 음악도 좀 크게 틀어놓고 듣고 싶고, 영화도 맘껏 내가 좋아하는 장르로 만끽하고 싶다.

오직 나만의 여행, 오직 나만의 휴식, 오직 나만의 힐링, 오직 나만의 자유로움을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나에게 위로같은 방학을 누리고 싶다.

내게 방학이 주어진다면 제주도 한달살기로 나만을 위한 삶을 누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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