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덕의 등산 재구성] (4)법주사 가족 사진 - 언제 찍었는지 추정은 이렇게.
[김진덕의 등산 재구성] (4)법주사 가족 사진 - 언제 찍었는지 추정은 이렇게.
  • 김진덕 칼럼니스트
    김진덕 칼럼니스트
  • 승인 2018.12.21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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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사진첩에 날짜가 적혀 있지 않은  법주사 사진이 있다고 할 때, 언제적 사진인지 대강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대표적인 리트머스 시험지가 바로 법주사의 아이콘인 미륵대불의 형태이다. 그렇다면 미륵대불을 통해서 법주사의 역사를 살펴 보자.

고종 연간의 법주사지에 의하면 경내에 60동이 넘는 요사채가 있었다고 한다. 그 가운데 일찍부터 청동대불이 있었는데,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하면서 훼철했다고 한다. 그 결과 일제시대 내내 법주사에는 미륵대불이 없어 이런 풍경이었다.

대웅보전과 팔상전을 지나 천왕문으로 선을 긋는다고 할 때, 좌측의 축이 무너진 느낌을 가지게 된다. 빨간 점이 있는 곳이 원래 청동대불(용화보전)이 있던 곳이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조각가 김복진과 시주자는 1939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한 부처님이다.  부처님의 육계가 드러나는 이 대불은 그냥 보기엔 아쉬움이 없는데 미완성이라고 한다.

그 시절부터 세계 최대를 운운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이 타이틀이 사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샀는데, 아쉽게 다른나라에 뺏겼다.

좌측의 사진은 1960년대 전후 찍은 사진으로, 사람들 뒤에 공사중인 게 보인다. 1964년 6월 14일 단오절을 맞아 점안법회를 성대하게 거행했다.  새롭게 등장한 부처님이 바로 오른쪽처럼 면류관(천개)을 쓰고 있다.

이때까지의 저간의 사정을 읽으시려면---> 동아일보

당시 주지였던 추담스님의 회고담을 읽으시려면 --> 여기를

이제 사진한장을 놓고 퀴즈하나 풀어보자

하단에 불기 2509년이 적혀있는데도  불교신문에서는 1960년대 중반이라고 하고 있다. 오기가 아닐까 싶다. 다른 삭유가 없다면 1964년 이전일 것이다.

그런데, 시멘트 내구연한인 20년이 지나자  안전과 미관의 문제가 노출되어, 1986년 해체하여 그자리에 광배가 저성된 청동대불을 건립하기 시작하여 1990년 점안되었다.

애초엔 정상인 불두 부분에 법주사를 전망할 조경시설까지 계획했다.고 하고, 결국에는 속이 텅비어 불두까지 108계단을 설치했다고 한다. 그런데 올라가 볼 수 있었으려나 궁금하다.

이후 부식 문제 등으로 인해  개금불사 등을 통해 2002년 눈부신 금동대불로 완성되었다.

지금은 이런 구도이다. 일제때하고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미륵대불 부처님이 계시고 안계시고의 차이일 것이다.

위치도 좋고 교통도 좋아서 속리산 법주사는 일제 때부터 한결같이 국가대표급 명승지였다. 할아버지, 부모님과 이모 고모 백부 숙부 그리고 손자대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온가족이  찾고 사진을 찍은 공통의 장소이다. 이제 우리 가족이 언제쯤 사진을 찍었는지 대강을 짐작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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