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꺼풀강사 역사탐방-3]조선 6대 임금 단종의 유배지, 영월 청령포를 찾아서
[눈꺼풀강사 역사탐방-3]조선 6대 임금 단종의 유배지, 영월 청령포를 찾아서
  • 양평호
    양평호
  • 승인 2018.08.0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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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청령포 - 울창한 송림과 단종의 슬픔을 간직한 육지 속의 작은 섬

지난 달 7월 31일.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에 위치한 코이카(KOICA-한국국제협력단) 월드프렌즈 영월교육원에서 2018년 5차 월드프렌즈 코이카봉사단을 대상으로 커뮤니케이션(의사소통) & 갈등관리교육을 진행했다. 강의 후 조선 6대 임금인 단종의 발자취를 따라 영월 장릉(莊陵)을 찾아 역사탐방을 마쳤고, 5시가 넘은 시간에 단종의 유배지였던 곳, 또 다른 역사의 현장, 아픔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육지 속의 작은 섬, 영월 청령포를 찾았다.

울창한 송림과 단종의 슬픔을 간직한 육지 속의 작은 섬, 영월 청령포
울창한 송림과 단종의 슬픔을 간직한 육지 속의 작은 섬, 영월 청령포

영월 청령포는 강원도 영월군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단종의 유배지로 2008년 12월 국가지정 명승 제56호에 지정되었다. 숙부인 수양대군에 의해 왕위를 찬탈 당하고 상왕으로 있다가 1456년 박팽년, 성삼문 등 사육신들의 상왕 복위의 움직임이 사전에 누설되어 모두 죽임을 당하는 사육신사건이 일어났다. 다음 해인 1457년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창덕궁 대조전에서 유배교서를 받고 음력 6월 22일 돈화문을 출발하여 약 천리 길을 걸어 일주일 후인 6월 28일 이 곳 청령포에 유배되었다. 그 해 1457년 여름에 큰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기게 되어 영월 동헌 객사인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기기까지 유배생활을 했던 곳으로 적막하고 고립된 육지 속 작은 섬이었다. 

영월 청령포로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나룻배의 모습.
영월 청령포로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나룻배의 모습.

영월 청령포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나룻배를 타야했다. 삼면(동북)이 강으로 둘러 싸이고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한 암벽이 솟아있어 걸어서는 들어갈 수 없고 밖으로도 출입할 수 없는 마치 섬과도 같은 곳이었다.

나룻배에 내려 바라본 영월 청령포의 모습.
나룻배에 내려 바라본 영월 청령포의 모습.

나룻배에서 내려 바라본 청령포의 모습으로 이백 미터 정도 걸어 도착할 수 있었다.

2004년 산림청 천년의 숲으로 지정된 청령포수림지의 모습.
2004년 산림청 천년의 숲으로 지정된 청령포수림지의 모습.

영월 청령포는 2004년 산림청 천년의 숲으로 지정된 수림지로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이 넘은 거송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고 단종이 머물던 단종 어소를 중심으로 울창한 송림을 이루고 있었다.

청령포 유배당시 머물던 단종의 어소 모습.
청령포 유배당시 머물던 단종의 어소 모습.

청령포 입구 좌측에 위치하고 있는 단종 어소의 모습으로 승정원일기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그 당시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단종이 머물던 본채와 궁녀 및 관노들이 기거하던 행랑채가 있으며 모형 인형을 만들어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본채 앞 마당에는 단묘재본부시유지비가 위치하고 있었다.

영조2년(1726)에 세워진 금표비의 모습.
영조2년(1726)에 세워진 금표비의 모습.

단종 어소로부터 북쪽 방향으로 백 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1726년(영조 2년)에 세워진 금표비가 세어져 옛 역사를 전하고 있었다. 금표비에는 동서로 300척 남북으로 490척과 이후에 진흙이 쌓여 생기는 곳도 또한 금지하는데 사용된다.’라고 쓰여져 있다고!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349호, 관음송의 모습.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제349호, 관음송의 모습.

청령포수림지 중앙에는 수령 600년(추정) . 둘레 5m, 높이 30m 크기의 관음송(觀音松)이 위치하고 있었는데, 이 소나무는 단종 유배시의 설화를 간직하고 있는 소나무로 1988년 천연기념물 제349호에 지정되었다. 단종이 유배생활을 할 당시 두 갈래로 갈라진 이 소나무에 걸터앉아 쉬었다는 전설이 깃들어 있는데, 단종의 유배당시 모습을 보았으며(-볼관), 때로는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소리음)는 뜻에서 관음송으로 불리고 있었다.

평창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노산대 모습.
서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노산대 모습.

관음송 뒤쪽에는 단종이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청령포로 유배된 후 해질 무렵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던 곳, 노산대가 위치하고 있었다. 이 좁은 청령포가 얼마나 답답하고 적막했을까.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뒷쪽으로는 험준한 산이 있고, 겹겹이 병사들이 지키고 있었을 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노산대에 올라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한탄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노산대에서 바라본 평창강의 모습.
노산대에서 바라본 서강의 모습.

노산대에서 바라본 서강의 모습이다. 이 서강 강물은 1457년 그 해 단종의 한을 기억하고 있을까.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 망향탑.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 망향탑(이미지 출처 : 블로그 - jaemuyu.com)

노산대와 육육봉 사이에는 단종이 절벽에 쌓아 올렸다는 망향탑이 있었는데, 자신의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근심 속에서도 한양에 두고 온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돌을 주워 쌓아 올렸다고 전해지는 탑으로 단종이 남긴 유일한 유적이라 할 수 있다.

육지 속 작은 섬 - 단종의 한이 서린 유배지, 영월 청령포 모습
육지 속 작은 섬 - 단종의 한이 서린 유배지, 영월 청령포수림지 탐방로 모습

지난 7월 31.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광천리에 위치하고 있는 울창한 송림과 단종의 슬픔을 간직한 육지 속의 작은 섬 . 영월 청령포를 찾아 역사탐방을 했다. 국가지정 명승 제50호에 지정된 곳으로 천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고, 무더운 날씨에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거대한 송림들이 빽빽이 들어차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서였을까. 40도의 무더운 날씨에도 곤충 한 마리도 날아다니지 않는 쾌적하면서도 자연 치유가 되는 장소였다. 더불어 단종 임금의 한이 서려 있는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다. 그래서 더욱 의미 있었던 역사탐방이었다. 사진이나 인터넷, TV에선 느낄 수 없었던 또 다른 감동을 경험할 수 있는 멋지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혹여 영월 청령포 - 역사의 현장을 찾아 감동을 느끼고 싶다면, 영월군 관광이나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영월군 안내전화 1577-0545/청령포매표소 033-372-1240에 문의하거나 www.ywtour.com(영월 문화관광)에 접속하여 더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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