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세 인생, 어른에게도 자유학기제가 필요해(칼럼08)
백 세 인생, 어른에게도 자유학기제가 필요해(칼럼08)
  • 황순유 칼럼리스트
    황순유 칼럼리스트
  • 승인 2018.06.21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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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독박 육아에 지친 아내!」

그 사이에서 왠지 모를 미안함과 죄책감에 기죽은 남자들이 뒤엉켜 살고 있는 세상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없고 모두 억울하다고 외치고 있다.

“그래서? 여자인 게 억울해요? 엄마인 게 억울해요?”

21세기의 며느리는 20세기 며느리와 다르게 살고 싶다. 21세기 엄마는 20세기 엄마들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

아이와 함께 꿈꾸고 아이와 함께 성장하며 아이와 독립된 나만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 21세기의 이상한 나라는 꿈과 희망의 세계이기를….

아이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다. 아이의 행복을 심지 않은 부모도 없다. 잘될 거다, 잘될 거다…라고 주문처럼 흘리는 말들이 씨앗이 되어 행복의 뿌리를 내리려면 엄마가 먼저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

엄마를 웃게 하고 꿈꾸게 하는 보통 엄마들의 소박한 이야기를 10회 연재로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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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백 세 인생, 어른에게도 자유학기제가 필요해

2008년부터 나는 아나운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대부분 대학을 다니면서 아나운서 공채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다. 드물긴 하지만 말을 잘하고 싶은 직장인 혹은 전문직을 가진 사람들이 방송 인터뷰나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 배우러 오기도 한다.

나는 최선을 다해 가르친다. 성심성의껏 밀착 지도를 하다 보면 빠르게 혹은 더디게 변화가 나타난다. 학생들도 자신들의 변화를 스스로 느끼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연습한다. ‘천재는 97%의 노력과 3%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고 에디슨이 말했다. 그가 강조하고자 한 것은 97%의 노력이었을까, 아니면 3%의 영감이었을까? 노력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하지만 분명한 건 타고난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학창 시절에 제일 싫어했던 말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머리 좋은 애 못 따라가고,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운 좋은 애 못 따라간다”라는, 부정할 수 없는 참의 명제였다. 살아보니 이건 어느 영역에서도 빠지지 않는 진리였다. 물론 지금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재능의 영역은 분명 있다. 재능이 있는 사람과 재능이 아예 없는 사람이 같은 일을 선택했을 때 결과는 판이하다.

방송인 배칠수 씨랑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성대모사는 얼마나 연습하세요? 목소리 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성대모사에서 배칠수 씨 뒤를 이을 만한 후배로 누구를 꼽으세요?” 나의 질문에 그는 역으로 물었다. “순유 씨는 언제부터 목소리가 좋았어요?” 예상치 못한 질문을 갑자기 받자 답을 찾기 힘들었다. 살면서 이런 질문을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누구도 나에게 언제부터 목소리가 좋았느냐고 묻지 않았다. 곧이어 배칠수 씨는 “아마 황순유 씨는 원래 좋았을 거예요. 아마 방송 일을 하면서 더 열심히 노력하고 연습했겠지만, 기본적으로 타고난 음성이 좋았을 거예요. 나도 그래요. 성대모사는 포인트를 잘 짚고 그걸 살려내는 재주가 필요해요. 그걸 본능적으로 잘하는 친구들이 있어요”라고 말한다. 뭐랄까? “열심히 하면 잘할 수 있을 거야”라는 대답보다 훨씬 현실적이었다. 그렇다고 시도도 해보지 않고 좌절하라는 얘긴 아니다. 내가 무엇을 더 잘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잘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나가라는 것이다. 재능이 조금 모자라면 노력으로 더 채우면 되지 않겠는가.

적성과 역량의 차이도 생각해보아야 한다. 둘은 비슷한 듯 다르다. 적성이란 ‘어떤 일에 알맞은 성질이나 적응 능력’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어쩌면 적응 능력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역량은 어떤 일을 해내는 힘이다. 한계 상황에 달했을 때 해낼 수 있는 사람과 해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결과를 내려는 사람은 근성이 있다고들 한다. 어느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적성이 요구되기도 역량이 요구되기도 한다. 직업을 택할 때는 나에게 맞는 적성을 고려해야 하고, 직원을 뽑을 때는 역량 좋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 물론 적성에 맞고 역량도 뛰어나다면 금상첨화겠지만.

77년생 내 친구들은 이제 기업에서 부장 이사의 직급에 올라서고 있다. 그러면서도 항상 불안에 떤다. 남자 동창들은 “언제 나가라고 할지 몰라. 나가면 닭 튀겨야 해”라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여자 동창들은 “몰라. 나 일 잘 못해. 몇 번이나 때려치우고 싶었는데 그냥 우리 나이엔 안 나가고 버티면 이만큼 올라가 있더라”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네 현실이다. 적성에 맞는 직업을 택해서 행복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 적성 따지다가 아무 일도 못 할 수 있다.

대학교도 그렇다. 꼭 원해서 전공을 선택한 경우보다 성적에 맞춰서 선택한 경우가 더 많았다. 전공이나 직업에 대해서 정보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시험 잘 보는 방법에 최적화된 시스템으로 살아온 10대들이 자신의 인생을 설계할 넓은 안목이 과연 있겠는가? 대학에서도 복수전공이나 전과의 기회는 본래의 전공 학과에서 학점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주어진다. 적성에 맞지 않고 학과 공부에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다른 전공을 선택할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잘하고 있는 학생들이 무기를 하나 더 챙길 기회를 얻는다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패자부활전이 아니라 이미 가진 자가 복수전공으로써 기회를 한 번 더 얻는 셈. 득템이다.

어른 중에 마지못해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처자식 먹여 살리기 위해’라는 진부한 70년대식의 대답이 아니더라도 마땅히 내가 뭘 잘하는지 모르고들 산다.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해본 적 없다고 말하는 어른도 많다.

최근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자유학기제 혹은 자유학년제가 실시되고 있다. 이러한 제도가 만들어진 이유가 뭘까? 단 한 번의 선택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것은 한 사람의 삶에서 막대한 손해다. 자유학기제는 덴마크의 ‘애프터 스콜레’와 같은 제도에서 나온 것이라 한다. 행복지수 1위인 덴마크는 여유롭게 자신의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보장하는 사회적 환경을 제공한다. 애프터 스콜레라는 프로그램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갈 때 1년간 인생 설계법을 배우는 학교다. 대학을 가기 전에도 들어갈 수 있는, 청년들의 1년짜리 ‘인생 설계 기숙학교’도 있다. 직장을 다니다 실직하면 ‘성인 공립학교’와 같은 곳을 다닐 수도 있다. 심지어 인생 2모작, 3모작을 준비하는 성인을 위해 마련된, 3개월에서 1년짜리 공립학교 애프터 스콜레도 있다. 단순히 돈과 밥벌이 수단을 찾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을 갖게 하는 시스템이다.

어쩌면 자유학기제, 자유학년제는 중학생보다 성인들에게 더 필요한 제도가 아닐까? 이젠 인생이 길어졌다. 더 길어질 것이다. 느지막이 성공한 가수 이애란 씨의 ‘백세인생’ 가사가 떠오른다. ‘못 간다고 전해라’라는 중독성 있는 후렴구는 ‘~라고 전해라’ 등으로 다양하게 패러디되었다. ‘육십 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 칠십 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할 일이 아직 남아 못 간다고 전해라. 팔십 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쓸 만해서 못 간다고 전해라.’ 60, 70, 80대가 되어도 할 일이 있다. 자신도 알지 못한 재능과 가능성이 존재한다. 우물처럼 파고 또 파다 보면 자신만의 샘물을 발견하는 그날이 온다.

나는 저세상에 계신 분께 진지하게 부탁하고 싶다. 시간이 된다면 40대, 50대의 우리에게도 한번 와달라고. 아직 따라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내가 아직은 젊은지, 할 일이 아직 남았는지, 아직은 쓸 만한지 생각할 기회라도 얻어보도록.

필자소개

황순유 

경인방송 FM90.7mhz ‘황순유의 해피타임907’ DJ 

KAA(한국아나운서아카데미) 강사

더 퓨어 컴퍼니 대표, 20년 경력의 프리랜서 진행자.

저서)황순유(2018),《77년생 엄마 황순유》, 도서출판씽크스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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