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이와 함께 자란다 (칼럼06)
엄마는 아이와 함께 자란다 (칼럼06)
  • 황순유 칼럼니스트
    황순유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6.07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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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독박 육아에 지친 아내!」

그 사이에서 왠지 모를 미안함과 죄책감에 기죽은 남자들이 뒤엉켜 살고 있는 세상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없고 모두 억울하다고 외치고 있다.

“그래서? 여자인 게 억울해요? 엄마인 게 억울해요?”

21세기의 며느리는 20세기 며느리와 다르게 살고 싶다. 21세기 엄마는 20세기 엄마들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

아이와 함께 꿈꾸고 아이와 함께 성장하며 아이와 독립된 나만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것. 21세기의 이상한 나라는 꿈과 희망의 세계이기를….

아이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 부모는 없다. 아이의 행복을 심지 않은 부모도 없다. 잘될 거다, 잘될 거다…라고 주문처럼 흘리는 말들이 씨앗이 되어 행복의 뿌리를 내리려면 엄마가 먼저 행복해야 하지 않을까?

엄마를 웃게 하고 꿈꾸게 하는 보통 엄마들의 소박한 이야기를 10회 연재로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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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엄마는 아이와 함께 자란다

지금의 나보다 스무 살이 많은 나를 상상해본 적이 있다.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 “네 인생에서 가장 걸림돌이 된 것은 무엇이니?” 이런 상상은 평온하게 흘러가는 평범한 일상에서 불현듯 머릿속을 멍하게 만든다. 여자의 인생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일까?

내 또래 여자들의 수다에서 왕년의 이야기는 빠지지 않는다. “내가 20년 전에는…”, “내가 대학 다닐 때는…”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지금보다 몸무게가 10kg은 덜 나갔었잖아.” “밤새 나이트에서 부킹하면서 놀았잖아!” “수능 전국 1% 안에 들었었지.” “직장에서 며칠 밤새워 만든 프로젝트로 매출 1위도 했었어. 완전 신이었어!” 잘나갔던 시절은 모두 다 왕년의 이야기다. 과거 한때의 이야기를 하면서 눈을 반짝인다. 과거의 빛났던 순간을 생각하면서 머릿속에 핑크빛 환상이 채워진다. 물론 실제로 그녀들의 과거가 그토록 판타스틱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실제로 본 적 없으니.

리즈 시절의 이야기를 할 때는 눈이 초롱초롱하다가 갑자기 표정과 말투가 바뀐다. “그런데 내가 애 낳고부터는 이러고 살잖아.” 갑자기 모든 문제의 원인이 깔때기처럼 귀결된다. 애를 낳고부터는 왕년의 내가 될 수가 없다. 급격하게 달라진 인생은 스스로 원치 않던 모습이다. 거울 속의 나는 질끈 묶은 머리에, 무릎이 튀어나온 회색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있다. 나의 이름을 누군가 불러준 지 오래되었다. 이력서의 마지막 줄이 이미 십 년 전의 이야기다. “내가 이러려고 애를 낳았나 생각하니 자괴감이 들어요”라고 말한다. 지금의 나로 만들어버린 근원이 바로 출산과 육아라고 말한다. 아이를 낳고부터 여자의 인생은 일시 정지되어버렸다. 플레이되지 않는 오디오처럼….

베이비시터도 못 믿겠고 시댁이나 친정엄마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그녀들은 결국 육아를 택한다. 동시에 보람도 없는 중노동의 삶이 연일 이어진다. “남들의 시간표와는 달리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 하고, 잘 수 있을 때 자야 하고, 굳이 마렵지 않아도 쌀 수 있을 때 싸둬야 한다”라고 생각하던 육아 시절이 있다. 보통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여자들이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비혼이니 싱글족 같은 말이 자연스럽지 않았던 때는 결혼과 출산은 사회적인 관문이었다. 꼭 해야만 하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여겼다. 나 역시 남들 다 하는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다. 아이를 낳는 게 어떤 일인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엄마가 되어버렸다. 어쩌다가 내 인생, 애 셋을 둔 엄마가 된 걸까?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정말로 아이가 엄마들 인생의 걸림돌일까?’ 세상에서 가장 슬픈 상상이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들이 내 인생의 걸림돌로 남는 건 어떤 슬픈 드라마보다 더 슬프다. 시간이 흘러 흘러 나의 지난날을 돌이켰을 때 절대 아이들 탓을 하고 싶지 않다. 상황을 탓하고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을 후회하면서 살고 싶지 않다. 아이들이 걸림돌이 되어 제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는 궁색한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

평균 수명이 60대이던 시절에는 당연히 20대 초반 아이 낳고, 40대면 중년이 되고, 50대 이후 노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이 낳고 다 키워놓은 50대 이후로 50년은 더 살아야 한다. ‘애 때문에 내가 꿈을 못 이뤘지’라고 변명할 수 있는 건 과거의 일이다. 마흔, 쉰이 넘어서 새롭게 시작할 기회나 시간은 충분하다. 아이가 걸림돌이라고 하는 건 어쩌면 소극적이고 게으른 지난날에 대한 핑계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더 열심히 살기로 했다. 먼 미래에 ‘아이들 때문에…. 아이들이 내 인생 걸림돌이었어’라고 화살을 돌릴 이유도 없다. 이러한 자신감 때문일까. 마음이 가볍다. 물론 때로는 두려움도 몰려온다. 반대로 아이들에게 엄마가 걸림돌이 될까 봐. 평범한 엄마들처럼 가정을 돌보고 아이들을 챙기는 게 생활의 전부는 아닌 엄마라서 아이들이 엄마 탓을 하지는 않을까…. 우리 아이들이 “다른 엄마들처럼 우리에게만 신경 써주는 엄마였다면 우리가 더 잘됐을지도 몰라요”라고 말하는 건 아닐까.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약속하고 싶다. “너희들이 어른이 되고 엄마가 할머니가 되었을 때 서로 고마웠다는 말을 건넬 수 있는 사이가 되자”라고. “단단하게 자기 길을 묵묵히 걸어간 엄마와 아빠가 있어서 내 인생도 당당하게 그릴 수 있었어요”라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삶을 산다. 함께 그리고 각자 살아간다. 서로에게 짐이 아니라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는 그날까지 나는 오늘도 새로운 아침을 맞이한다.

필자소개

황순유 

경인방송 FM90.7mhz ‘황순유의 해피타임907’ DJ 

KAA(한국아나운서아카데미) 강사

더 퓨어 컴퍼니 대표, 20년 경력의 프리랜서 진행자.

저서)황순유(2018),《77년생 엄마 황순유》, 도서출판씽크스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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