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당연한 상파울로 <3화>
[웹소설]당연한 상파울로 <3화>
  • 이본느
    이본느
  • 승인 2016.12.26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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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여대 작가 양성 프로젝트

이본느

배가 고파 잠에서 깼다. 창 너머가 깜깜했다. 시계를 보려 핸드폰을 꺼냈다. 화면 불빛에 눈이 부셨다. 일곱 시 팔 분. 이 무렵의 해는 퍽 짧았다. 모리는 자고 있었다. 몸 안에서 수분이 전부 빠져나간 것 같았다. 도무지 일어날 기운이 없었다. 나는 그동안 밀린 카톡을 쓱 훑어보았다. 불빛 때문인지 모리가 뒤척거렸다. 깨는 것을 찬찬히 기다리기에는 너무도 배가 고팠다. 나는 팔을 뻗어 등을 밀쳤다. 쿵, 소리와 함께 모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욕설이 들린 것도 같았다.

고기 먹을까?

나는 천연덕스럽게 물었고 모리는 잠이 덜 깬 채로 더듬더듬 손을 뻗어 휴대용 버너를 챙겼다. 때때로 고기가 먹고 싶어질 때면 홍대 놀이터로 갔다. 놀이터에는 놀이기구 말고도 단층 짜리 건물이 있다. 화장실, 그리고 홍익지구 노인정이다. 우리는 놀이터 뒤편 외곽에서부터 그 건물 옥상에 올라 외식을 즐기고는 했다. 고시원 주방에서는 냄새나는 음식을 해 먹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가게에 가서 자리 잡고 앉아 먹기엔 돈이 없었다. 휴대용 버너, 프라이팬, 사 온 고기, 정육점에서 챙겨준 파무침, 고시원 냉장고에서 퍼온 쌈장. 근처 편의점에서 소주를 사며 슬쩍 챙겨온 나무젓가락 정도가 우리 바비큐 파티에 필요한 준비물이었다.

옥상에 가기 위해서는 철창을 넘고 벽을 타야만 했다. 모리가 먼저 나무 벤치 위에 올라섰다. 능숙하게 창살 틈에 발을 끼워 넣고 성큼성큼 타고 올랐다. 오를 때마다 철창에 붙은 ‘출입금지’ 표지판이 철렁거리며 흔들렸다. 철창 위에서 중심을 잡고 아슬아슬하게 서서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휴대용 버너부터 고기까지 손에 든 것들을 위로 올려 보냈다. 모리는 차례대로 그것들을 옥상으로 던지듯 올려놓았다. 맨손으로 옥상 꼭대기를 짚고는 발로 벽을 차듯 딛고 올랐다. 나는 마찬가지로 모리가 디뎠던 자리들에 발을 얹으며 따라 올라갔다. 간만에 옥상을 오르니 숨이 찼다. 잔뜩 빨개진 손바닥이 얼얼할 만큼 힘을 주지 않으면 이곳은 올 수 없었다. 무릎, 벽에 닿았던 가슴팍이 잔뜩 더러워져 있었다. 나는 손으로 먼지를 툭툭 털며 버너에 불을 올린 모리 옆에 가 앉았다.

고기 굽는 냄새가 사방으로 퍼질 쯤, 나무젓가락을 반으로 뚝 갈라 허겁지겁 식사를 시작했다. 다 익었는지 혹은 탔는지 맛을 느낄 새도 없이 고기는 파무침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뜨겁고 맵고, 정신이 없었다. 젓가락을 불판에 뻗으려 고개를 숙일 때마다 머리칼이 쏟아졌다. 나는 귀 뒤로 머리칼을 넘기다가, 귀에 꽂아두었던 국화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벌떡 일어나서 주변을 휘, 둘러보았다. 옥상 바깥을 넘겨보기도 했다. 오르며 떨어진 것은 아닌지, 놀이터 어디에도 국화는 보이지 않았지만 눈을 뗄 수 없었다. 모리는 내가 허둥대고 있자 입 안 가득 넣은 고기를 겨우 삼키고 물었다.

뭐 찾아? 
국화. 못 봤어?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어깨를 으쓱 추어올리고는 그게 끝이었다. 나는 국화 한 송이를 어디에서 잃어버렸는지, 어디에 흘린 것인지 떠올리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딱히 떠오르는 곳은 없었다. 그럴수록 자꾸만 초조해졌고 코가 시큰거렸다. 반지가 있던 자리를 엄지로 매만지며 계속 생각했다. 

휘익.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휘익. 휘이익.

요란한 울림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아래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모리는 호루라기 소리에 벌써 버너의 불을 끄고 짐을 챙기고 있었다. 주민 신고가 들어온 게 뻔했다. 이전에도 자주 겪었던 일이었다. 순찰대에 한 번만 더 민원이 들어오면 단순한 훈방으로 끝내지 않을 거라는 경고가 퍼뜩 떠올랐다.

놀이터 정면을 보고 있는 쪽의 바깥을 내다보자 빨간색의 동네 순찰대 조끼를 입은 노인 두 명이 내려오라며 소리치고 있었다. 우리가 순순히 내려가지 않으면 경찰을 부를 거라고도 했다. 모리는 불판과 버너를 옥상 한 편에 숨겨두고는 우리가 올라왔던 건물 뒤편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와중에도 국화를 찾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저 쪽 어딘가에,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아래 어딘가에 꽃이 떨어져 있을 것만 같았다. 어디에서 떨어트렸더라. 어디 있을까.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순찰대 사람들은 노인정에서 사다리를 구해 와, 옥상에 대고 있었다. 몇 번이고 동네 지구대를 드나들었던 내 얼굴을 알아차리고 열이 잔뜩 오른 것 같았다.

우리를 끌어내릴 요량이었다. 내가 내려오질 않자 모리는 다시금 위로 올라와 내 손을 잡아챘다. 우리는 철창을 밟고, 벤치로 뛰어내려 놀이터의 반대편 골목으로 달렸다. 나는 달리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다.

국화가 꼭, 당연하게 거기에 있을 것만 같아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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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여대 소설창작론 ‘작가의 탄생’팀은 미래의 예비 작가 양성을 위해 “나 혼자 쓴다 – 웹소설 1억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지금은 웹소설 시대, 신춘문예의 계절 12월에 원고지대신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이번 테마는 ‘서울’. 서울이란 공간을 모티브로 서울에 사는 젊은이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희망을 쓰겠습니다.

-작가 이본느-

고양이 알러지가 있는 비극을 타고 났습니다. 이정도의 운명이면 어디에선가 주인공이 되어볼 법 한데, 아직 때는 오지 않은 것 같네요. 가장 잘 아는 것을 옮겨 적어야지, 하고 글로 적고 나면 너무나도 낯선 세계가 놓여 있습니다. 그 간극을 좁히는 일을 계속해서 해 나가고 싶습니다. 함께 쓰는 이들과 오래도록 동지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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