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동수가 바람났다 <2화>
[웹소설]동수가 바람났다 <2화>
  • 조다슬
  • 승인 2016.12.26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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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여대 작가 양성 프로젝트

조다슬

지혜가 바람난 동수를 목격한 그 날은 원래 회식이 있던 날이었다. 오후 4시 즈음, 팀장이 전화 한 통을 받더니 얼굴이 벌게져서는 상기된 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이걸 어쩌나! 와이프 출산 예정일이 이주 뒤인데, 애가 성격이 급한지 오늘 나오려 한다네.” 그 부부가 오랜 노력 끝에 얻은 아이였고 직원들은 한마음으로 축하했다. “아휴, 부모님이 그렇게 기다리는 걸 알고 일찍 나오나 봐요.” “효녀네 효녀야.” “어머, 딸이래요?? 사모님 닮았으면 엄청 미인이겠다.” “축하드려요. 팀장님!”

팀장은 낼 수 있는 가장 행복한 목소리로 말했다. “회식은 다음 주로 미룹시다. 대신, 내가 소고기를 사지요!” 지혜는 갑자기 생긴 여유시간이 반가웠다. 요즈음 유독 일이 바빴고, 지난 주말에는 김장 하느라 본가에 다녀오는 바람에 거의 2주간 동수를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오빠, 나 회식 취소됐어! 
저번에 오빠가 보고 싶다던 영화 볼까?”」

바로 문자를 보냈는데, 답장은 퇴근 시간까지 오지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동수는 원래 연락이 잘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메신저도 무음, 문자도 무음, 전화도 무음. 지혜도 일할 때면 핸드폰을 꺼두는 편이라 불만은 없었고, 퇴근 후에나 약속 한 두 시간 전부터는 동수에게서 늘 먼저 연락이 왔기 때문에 불편함도 없었다.

‘야근 하나 보다.’ 아쉽지만 동수의 답장은 포기하고, 지혜는 혼자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이게 얼마 만에 혼자 보는 영화야.’ 지혜와 동수는 음식 취향은 비슷했지만, 영화 취향은 영 맞지 않았다. 지혜는 남들이 지루하다고 느낄 법한 잔잔하고 무던한 영화가 취향이었다. 그러나 동수는 무언가를 깨부수거나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종류의 영화를 선호했고, 그렇지 않은 것을 볼 때면 두 번 중 한 번은 잠이 들곤 했다.

그래서 지혜가 좋아하는 영화 한 번. 동수가 좋아하는 영화 한 번을 번갈아 보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는데, 그도 그녀가 진절머리를 치는 공포영화는 피해 주었고 그녀도 그가 한숨부터 쉬는 로맨스 영화나 독립영화는 피해주었다. 지혜는 그래서 오늘은, 로맨스 독립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독립 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그나마 가장 가까운 종로 3가에 있는 영화관에 갔다.

지혜는 오래간만에 보는 취향의 영화가 무척 좋았다. 너무 직설적이지 않은 스토리에 마음도 편안했고, 그보다 좋았던 것은 영화의 배경이 서촌이었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 지혜는 서촌을 사랑했다. 서촌은 애매한 동네다. 이름부터도 경복궁의 서쪽이라는 ‘서촌’, 다른 것이 있어 존재하는 조연 같은 느낌. 골목골목엔 한옥이며 가게들이 전통적인 느낌을 자아내는데, 조금만 큰길로 나가면 6차선 도로에 프랜차이즈가 수두룩하다. 몹시 한적하지도 그렇다고 소란스럽지도 않은 동네. 지혜는 그 애매한 동네가 자신과 닮은 듯했다. 엑스트라인 그녀는 주연은 바라지도 않았다. 조연 같은 이 동네가 딱 좋았다.

한 달에 서너 번은 찾던 그 서촌을, 취직하고 동수를 만나며 지혜는 영 가지 못했다. 거리도 멀거니와 교통편도 불편했기 때문에 온종일 시간을 내지 않고는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추억의 서촌을 뜻밖에 영화에서 만나니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오니 21시 17분. 내일은 토요일이라 출근을 하지 않고, 막차까지는 아직 3시간 남짓이 남아있었다. 오래간만에 드는 몽글몽글한 마음에 지혜는 서촌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발이 아프다고 쇼핑도 자제하는 그녀가 그렇게 마음먹은 것은, 그날 그녀가 유독 센티했기 때문이다. 극장에서 서촌까지는 걸어서 32분.

지혜는 수년 전 즐겨 듣던 노래를 틀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길옆에 있던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사들고는, 이정표를 보기도 하고 핸드폰 지도를 보기도 하며 한참을 걸어갔다. 그러다 보니 눈에 익은 골목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바로 그즈음 동수의 답장이 연달아 왔다.

「지금 봤네. 이제 퇴근하는 길이야. 
너무 늦어서 지금 보기는 힘들겠지? 
이미 집인가?」

미리 보기로 확인을 했지만 들어가서 읽지는 않았다. 동수에게는 미안하지만, 지혜는 지금 자신만의 시간에 제대로 만족하던 참이었다. 턱 옆에서 스치는 옷깃과 종아리를 감아쥐는 날카로운 바람, 아직 식지 않은 커피 컵, 향긋한 원두 냄새와 입에 남은 쌉싸름한 맛. 세상 행복한 그녀는, ‘오늘은 내가 씬스틸러다.’하는 뻔뻔한 생각을 했다고 했다.

서촌에는 그녀가 사랑하던 향수 가게가 있었는데, 유명한 영화의 느낌을 재현한 향수들을 만드는 가게였다. 그녀의 친구들은 대학생들답게 ‘라 붐’이나 ‘로마의 휴일’처럼 풋풋하고 싱그러운 향들을 선호했는데, 지혜는 진하고 무거운, 8월에 활짝 만개한 꽃에서 날 법한 향의 ‘보바리 부인’을 골랐다. 활짝 만개한 꽃 같은 향수를 뿌리면, 자신도 피어나는 것 같았다. 향수라는 것이 보이지 않아서 더욱 그랬다. 그것이 허황한 것인 줄 알면서도 그 나이의 그녀는 그랬던 것이다.

지혜는 ‘보바리 부인’ 두 통을 비우고 세 통째 사둔 것까지 거의 사용하고 나서야 다른 향수로 바꾸게 되었다. 그 저녁, 지혜는 그 향수를 다시 뿌리기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직 그 가게가 있으려나, 온 김에 두세 통 사가야겠다.’ 하는 찰나, 건너편 길에서 걸어오는 커플이 보였다.

커플 신발에 팔짱을 끼고는 여자가 끊임없이 조잘거리고 있었다. 지혜는 그들을 보며 ‘좋을 때다. 아직 어린 애들인가 보네, 나도 저렇게 말이 많을 때가 있었던가.’ 따위의 생각을 했다. 그러다 시선을 거두고 계속 걷는데, 문득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

“오늘 영화 재밌었지? 오빠가 재밌을 거랬잖아.”

익숙하다는 생각보다, 그 목소리를 향하는 익숙한 고개 짓이 빨랐다. 지혜가 그 커플을 다시 보는데,

‘동수가 바람났다.’

‘아닐 수도 있다. 사촌 동생이나 아는 후배일 수도 있지. 요즘 세상에 팔짱 정도야 뭐.’ 하는데, 여자가 동수 볼에 쪽. 입술에 또 쪽.

그래, 동수가 바람났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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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여대 소설창작론 ‘작가의 탄생’팀은 미래의 예비 작가 양성을 위해 “나 혼자 쓴다 – 웹소설 1억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지금은 웹소설 시대, 신춘문예의 계절 12월에 원고지대신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이번 테마는 ‘서울’. 서울이란 공간을 모티브로 서울에 사는 젊은이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희망을 쓰겠습니다.

-작가 조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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