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뼈 도둑 <2화>
[웹소설]뼈 도둑 <2화>
  • 윤애솔
    윤애솔
  • 승인 2016.12.2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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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여대 작가 양성 프로젝트

윤애솔

2012년 9월 10일 월요일 서울
오늘 전기세, 수도세 내고 은행 들러서 적금도 하나 더 만들었네.
이렇게 집안일 하다보면 내가 정말 없어지고 ‘누구 엄마’로만 남는 것 같아 끔찍하다.
그래도 당신이 있어 버틸 수 있었어. 벌써 그립구나.

아빠 이야길 하는 걸까. 까만색 펜으로 꾹꾹 눌러 써내려간 글씨가 호기심을 더욱 부추겼다. 다음 장으로 넘겼다. 왠지 손가락에 자꾸만 땀이 찼다. 괜히 주위를 힐끔거리다 마저 읽어 내려갔다.

2012년 9월 12일 수요일 서울
오늘 설교를 들으면서 다시금 생각했다. 교회에서의 당신은 정말 멋진 사람이라고….
왜 진작 만나지 못했을까. 하다못해 몇 년이라도 더 빨리 만났었더라면….
지금 내가 누구와 함께 있다는 게 원망스럽다.
내 곁에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게 너무나 거추장스럽다.
그냥 당신은 당신인 채로, 나는 나인 채로 만나고 싶을 뿐인 건데….

아빠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고, 엄마와 아빠는 오래 된 소꿉친구였다. 그리고 우리 집은 파주에 있었다.

2013년 9월 30일 일요일 서울
김장현, 그 이름만 들어도 이제는 설렌다.
오늘은 그이와 함께 밖에 단풍 나들이를 다녀왔다.
어디서도 느껴본 적 없던 떨림이었다.
다음엔 또 어딜 가자고 할지 설레어서 잠을 요즘 통 못 잤다. 주책이지.

우리 아빠 이름은 박준택이었다. 내가 아는 김장현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일순 너무 따가운 햇살에 현기증이 나 신경질적으로 일기를 넘겨댔다. 이게 대체 무슨 이야기들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아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었다.

2014년 5월 8일 목요일 서울
어버이날에 또 다른 어버이인 당신과 소풍을 나오다니 참 우습고 기쁘다.
언제쯤이면 더 당당하게 만날 수 있을는지….
오늘은 멋진 분홍색 셔쓰에 귀여운 목걸이….
목사 같지 않은 복장임에도 여전히 멋지게 설렜??
내가 대강 싸간 도시락에도 웃으며 먹어주니 참 좋다.
평생 이렇게만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는 파주에 살면서도 부득불 서울 은평구로 교회를 다녔고, 엄마가 다니는 교회 목사 이름이 김장현이었다. 거기까지 읽고 일기를 덮었다. 밝은 햇살이 현기증을 이고 왔다. 황급히 일기를 가방 속에 다시 아무렇게나 우겨 넣었다. 심장이 벌렁거렸다. 누가 내 꼴을 본 건 아닌지 주위를 둘러봤다. 내게는 그늘 한 점도 없이 환하게 내리쬐는 햇살이 따가웠다.

아냐, 이건 엄마의 일기가 아니었다. 내가 괜히 엄마 글씨도 못 알아보다니. ‘전정희’라고 이름 써 두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아마 다른 이가 쓴 일기에 이름만 엄마 이름으로 해 두어서 속임수를 쓴 것이다. 분명 누군가 괘씸하게도 엄마 이름을 이용한 것이었다.

그런데 누가? 우리 집에서, 엄마 화장대 뒤에 이 일기를 숨겨두면서 엄마 이름을 쓸 사람이 있던가? 곱씹을수록 따가운 햇살에 현기증이 인다. 벤치를 온통 노랗게 물들이는 햇볕이 해맑았다. 엄마 글씨가 맞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해야 했다.

다시금 가방에서 일기를 꺼내드니 처음과는 달리 너무 묵직하다. 너무 두껍고 빳빳하다. 다시 앞 장을 펼쳐 확인해 본다. ‘ㅂ’을 넓적하고 이상하게 썼다. ‘ㅇ’도 길고 못생겼다. 엄마는 시원시원한 말씨와는 달리, 글씨를 정말 못 쓰는 편이었다. 글씨가 지나치게 길고 넓적해 동생이 늘 웃곤 했다. 사정없이 비춰주는 햇살에 짜증이 난다.

종이를 찢을 듯이 넘겨 일기의 뒷부분을 확인해 봤다. 온통 적힌 김장현의 이름과 사랑한다는 말들…. 그리고 단 한 글자도 없는 나와 동생, 아빠의 이름. 눈을 질끈 감고 일기를 덮었다. 일기를 찢어버릴 듯이 쥐었다. 눈을 감고 있어도 앞이 캄캄했고 눈을 떠도 앞이 보이질 않았다. 차라리 이름 모를 여자가 우리 집에 숨어 살면서 밖에서는 엄마의 행세를 하고, 집에서는 몰래 이렇게 우리 엄마인 양 일기를 써서 숨겨 놓았다는 게 더 신빙성 있을 소리였다. 헛웃음이 나왔다.

이제는 누구에게 이 일기를 펼쳐 보이며 이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해명을 요구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동생이나 아빠가 이 일기를 본다면? 눈을 감아도 느껴지는 뜨거운 햇살에 머리를 짚었다.

일단 다시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동생이 걱정할거고, 뭘 했느냐고 물을 것이다. 그럼 어떻게 답해야 할까. 사실 엄마 일기를 봤어…. 근데 그 안에 목사랑 엄마가 어떻게 연애했는지에 대해 나와 있더라고…. 그래서 그거 구경하느라 좀 늦었어, 미안해. 이렇게? 웃음이 난다. 아빠 얼굴은 어떻게 봐야 할까. 항상 무뚝뚝하고 말이 없는 사람이지만 누구보다 가족을 아끼는 사람이 아빠였다. 금요일마다 장미꽃을 사들고 와 엄마에게 주는 아빠를 보며 ‘나도 나중에 결혼해서 저렇게 살아야지’ 싶은 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 엄마는 그 순간에도…. 나는 이만 생각하기를 그만둔다.

머릿속이 모두 다른 이들의 목소리로 시끄럽다. 햇살이 너무 따갑고 괴롭다. 그늘 한 점 없는 벤치에서 벗어나야 했다. 무거워 끈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가방을 다시 메고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간다. 햇빛에 발이 묶이는 기분이었다. 벤치는 여전히 그늘 한 점 없이 햇살을 온 몸으로 맞고 있었다. 꼭 혀를 깨물고 싶었다.


***


동생이 무얼 하고 왔냐고 물었다. 밖에 춥지 않았어? 동생은 자꾸만 곁에 있는 걸 확인받고 싶은지, 내 옷자락이며 가방끈이며를 잡아왔다. 나는 그냥 밖에 벤치에 앉아있다 왔다고 했다. 햇빛이 엄청 따갑더라고. 그래서 좀 맞고 왔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에도 동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손을 잡아온다. 동생은 아빠와도 손을 맞잡은 채다.

이제는 조문객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이내 아빠가 조문객을 맞으며 동생의 손을 풀었다. 나는 여전히 동생의 손을 맞잡은 채로 엄마의 영정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엄마는 여전히 해맑게 웃고 있다. 엄마는 늘 그랬다. 평생 화 한번 내지 않고 다정하기만 하던 엄마. 무뚝뚝한 아빠와는 달리 장난기도 많고 우울한 기색 하나 없던 사람. 엄마는 내 평생의 친구였다.

그런데 이젠 뭔가 달랐다. 엄마의 웃는 얼굴을 보기가 더부룩해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이니 반사작용처럼 눈물이 후둑 쏟아진다. 울고 싶은 게 아니었는데, 허둥거리며 주위 휴지를 찾으니 그 꼴을 보고 조문하던 아주머니 한 분이 와서 나를 끌어안는다. 까만 셔츠에 눈물이 아무렇게나 묻는다.

누군지도 모를 아주머니에게서 불가리 향수 냄새가 났다. 알고 뿌리고 온 걸까. 불가리 향수까지는 내가 어찌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름도 모를 아주머니에게 안겨 한참 눈물을 쏟는다. 아까까지도 지금 이 모든 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이 더 절실했다. 아주머니의 굽은 어깨 너머로 엄마가 아직도 웃고 있었다.


***


넉넉하게 한 품이면 다 안기던 엄마가 이젠 두 손 안에 다 들어왔다. 고운 뼛가루가 옥색 통 안에 넘실거렸다. 엄마의 분골을 가지고 차로 이동하면서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들 중 둘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가 않았고, 하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차로 도착한 곳은 서대문구 근처의 어딘지도 모를 작은 산 중턱이었다. 서울이라는 것만 알았다. 서울이라면 그 목사의 교회가 있던…. 이내 생각을 그만둔다. 여긴 아마 할아버지의 땅이라고 들었다. 엄마와 아빠가 어렸을 때 뛰놀던 작은 산.

물끄러미 다시 아빠 손에 들린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는 가족을 모두 잃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빠는 가족을 잃었던 적은 없었지만, 엄마를 보내는 데 더 많은 사람들이 오는 건 싫다고 했다. 그래서 이 산엔 차에 아직 타고 있는 상조회사 직원 몇 명, 그리고 아빠와 동생, 나, 그리고 엄마뿐이었다.

“왜 이 산엘 왔어?”
“엄마랑 아빠가 어렸을 때 늘 놀던 곳인 걸….”

아빠의 목소리는 혼이라도 나는 듯이 풀이 죽어 있었다.

“보통 바다에 뿌려 주지 않나.”
“바다가 다 무슨 소용이야, 추억은 여기에 있는 건데.”

아빠는 단호한 말관 달리 속삭이듯 내게 말하며 조심스럽게 엄마의 뚜껑을 열었다. 엄마를 산 속에서 자유롭게 뛰놀게 하고 싶다는 아빠의 말에 따라, 분골을 산에 뿌려주기로 했다. 상조 회사 직원들은 의아하게 서로를 쳐다보며 당황해 했었지만, 동생과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햇살이 나무 그늘에 가려져 내 몸에 하나도 닿지 않았다. 이제 나는 눈물도 나지 않았다. 고운 가루가 아빠 손에서 금방 흩어졌다.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뜨거운 가루였다. 아빠는 엄마의 뼛가루를 터벅터벅 걸어가면서 흔적을 남기듯 뿌렸다. 누가 보면 자연장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산책하는 줄 알 것이었다.

나무도 한 번 쓰다듬어 보고, 허리께까지 자란 잡초도 한 번 쓸어 보는 아빠를 보며 동생은 또 눈물을 훔쳤다. 멀리서 아빠의 턱 밑으로도 물방울이 똑 떨어진 것도 같았다. 겨울이라 휑한 산임에도 햇빛은 저 멀리서 따갑게만 빛났다.

아빠가 눈가를 한번 쓱 훔치더니 곁으로 와 내게 하얀 엄마를 건넨다. 하얗고 고운 가루가 아직도 한참이나 남아있다. 엄마라기 보단 초등학교 칠판의 하얀 분필 가루 같아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았다. 아빠가 거의 느껴지지도 않을 정도로 내 등을 슬쩍 밀어 보였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발걸음을 옮긴다. 따뜻한 엄마를 안고 있자니 정말 마지막인 것 같아 괜히 눈가를 긁고 싶어졌다. 그러나 내 머릿속을 온통 채우고 있는 건 아까의 그 ‘전정희’가 적힌 일기장뿐이었다. 괜히 아까 아빠보다 더 멀리 가며 엄마를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냈다.

엄마, 진짜 저거 다 엄마가 쓴 거야?

엄마는 대답이 없었다. 마냥 내 손가락을 마주잡아왔다.

엄마, 진짜 그 목사랑 그랬어?

엄마는 여전히 묵묵하다. 곱기만 한 뼛가루가 너무 무거웠다.

엄마….

차마 입으로 뗄 수 없는 저급한 질문들을 꿀꺽 삼켜냈다. 그 일기장에 단 한 번도 적힌 적 없는 나와 동생, 그리고 아빠의 이름. 세상에 단 두 명의 존재만 적혀 있던 낡고 무거운 일기장. 왜 하필 사고가 서울에서였어. 엄마는 그 사람을 사랑했을까. 우릴 사랑했어? 묻고 싶지만 답이 없을 것이 두려워 침만 두어 번 삼켰다. 열 몇 번의 발자국 뒤에 아빠가 서있었다.

그러다 정말 뼛가루가 든 함이 가벼워졌다 싶을 때 별안간 정신을 차렸다. 다음은 동생이 엄마를 보낼 차례다. 동생이 한 움큼도 남김없이 엄마를 산에 보내고 나면 그 다음은 정말 없다.
나는 문득 손이 저려온다. 엄마를 어떻게든 한 가닥이라도 잡고 있어야 했다. 난 아직 엄마에게 물을 것이 많았고, 엄마에 대해 괴로워하며 곱씹어야 할 글씨들이 있었다. 나는 엄마를 조금 남겨두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열 몇 발자국 뒤의 아빠와 동생이 차마 발견하지 못하기를 바라면서, 오른손을 한껏 펼치고 엄마를 한 줌 쥐어, 재빨리 자켓 자락에 집어넣었다.
그러곤 손을 빼지 않은 채로, 함을 반대쪽 손으로 다부지게 부여잡는다.
마침내 무사히 열 몇 걸음을 걸어 동생에게 함을 건넸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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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여대 소설창작론 ‘작가의 탄생’팀은 미래의 예비 작가 양성을 위해 “나 혼자 쓴다 – 웹소설 1억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지금은 웹소설 시대, 신춘문예의 계절 12월에 원고지대신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이번 테마는 ‘서울’. 서울이란 공간을 모티브로 서울에 사는 젊은이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희망을 쓰겠습니다.

-작가 윤애솔-

파주완 전혀 상관없는, 소개할 것이 에버랜드밖에 없냐고 놀림 받는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소설을 쓰게 된건,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가 멋지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 멋지고 대단한 일을 따라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직 세상 물정을 덜 경험해서인지 장래희망이 너무 많아, 적으면 원고지 열 장은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즘 ‘편순이’ 일을 하면서는 ‘절대 서비스직은 하지 말아야지’ 하고 하루에 열 번씩 다짐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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