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이방인 <2화>
[웹소설]이방인 <2화>
  • 변수정
    변수정
  • 승인 2016.12.2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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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여대 작가 양성 프로젝트

변수정

음료수 박스를 바닥에 내려놓고 가만 숨을 뱉었다. 소파를 반 바퀴 빙 돌자 더 늙어버린 노인의 얼굴이 보였다. 무생물처럼 소름 끼치도록 텅 빈 검은 눈이 허공을 가로질러 TV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5년 전에도 이렇게 흐리멍덩한 얼굴이던가? 확신할 수는 없었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아버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 저 왔어요.”

“….”

당신은 나의 동반자, 영원한 나의 동반자. 나는 잘 모르는 철 지난 트로트 가사를 아버지는 힘없이 코끝으로 흥얼거렸다. 다 뭉개진 발음이 몇 개 남지 않은 이 사이로 흘러나왔다. 시선은 여전히 TV를 향해 있었다. 괜히 긴장한 게 무색할 정도로 반응이 없어 나는 쌓인 긴장을 뱉어내듯 가볍게 후, 숨을 내쉬었다.

낡은 소파는 앉으면 가죽이 찌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 옆에 앉아본 것은 얼마 만일까? 괜히 눈을 끔벅이며 옮아가던 시선은 문득 아버지의 오른손목에서 멈추었다. 갓 걷기 시작한 어린아이들이나 차고 다닐 것 같은 미아 방지용 팔찌가 아버지의 손목에 채워져 있었다.

살살 손을 뻗어 팔찌를 뒤집어보자 아버지의 이름과 집 전화번호가 음각으로 새겨져 있었다. 한참을 그 자리에서 뭉개며 핸드폰을 만지작대다가, 아버지의 눈치를 보았다가, 공기가 영 불편해져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부엌을 분주히 누비는 엄마에게 다가갔다.

“도와줄까?”

“…아빠가 말이 없다, 그치.”

“으응.”

“너 오기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윤경이는 언제 와?’ 하고 물으셨는데.”

“그랬구나.”

나는 별말 없이 엄마가 맨 앞치마의 등 리본 끝자락을 매만졌다. 내 기억 속의 아버지가 부르는 내 이름은 보통 ‘이 년’, ‘저년’, 아니면 ‘망할 년’이었다. 저건 정신 줄이 흐린 아버지가 얼결에 뱉은 말일까? 아님 그냥 엄마의 빈말일까?

얘가, 숙맥같이 구네. 입가에 수저가 불쑥 들이밀어졌다. 나는 뜨끈한 된장찌개를 받아먹으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했다. 최소한 내일, 이르면 오늘 저녁에라도 나는 당장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 괜히 나쁜 생각을 집어치우고는 된장찌개를 한 입 더 퍼먹었다.

“요즘 니 아버지는 통 말을 안 하신다.”

“왜?”

“글쎄. 저번 날에 병원을 같이 다녀와서 그런가 봐. 오래 못 사실 것 같단 소릴 들었거든.”

오래 살지 못할거라는 말을 들은 아버지는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까 보았던 아버지의 초점 없는 눈동자는 자신이 죽을 날을 가늠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세상 너머의 다른 것에라도 눈을 마주치고 있는 듯 했다.

“의사가?”

“으응. 식사두 통 안 하시고.”

“아버지, 된장찌개 좋아하시잖아.”

“네가 가서 식사 하시라고 좀 말씀 드려 봐, 응?”

“불러도 안 보시는데 식사라고 하실까.”

“얘가. 그래도.”

나는 저녁 준비를 하러 식탁에 수저를 놓다 말고 등을 떠밀렸다. 아버지, 식사하세요. 소파 너머로 아버지의 어깨를 슬쩍 건드렸다. 아버지는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로 느릿느릿 일어나더니 상상 속 어떤 느릿느릿한 동물, 거북이보다도 느린 상상의 생물처럼 걸어 식탁 앞에 앉았다.

당신이 앉는 자리만큼은 어딜 가도 늘 상석이어야 했던 아버지는 정신이 제대로 들지 않아도 어쨌든 상석을 귀신같이 찾아가 앉았다. 나는 아버지의 앞에 수저와 앞접시, 물컵을 차례로 놓았다. 아버지 자리 옆에 크리넥스 통 하나와 뭐가 뭔지 모를 가루약 봉투들이 놓여있었다.

“…망할 년….”

5년 전과 똑같은 냄비 받침을 올리고, 그 위에 뚝배기를 올리는 동안 슈퍼에 심부름을 갔다던 동생이 돌아왔다. 기름칠이 되지 않은 경첩이 소란스레 삐걱이는 탓에 아버지가 깊이부터 토해낸 말은 꼬리만 겨우 남기고 흩어졌다. 아무도 듣지 못한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못 들은 척을 하고 말았다. 정말로 5년 전과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누나 왔네, 주말에나 올 줄 알았더니.”

“월차 내구 왔지.”

“취직을 하긴 한 모양이구나?”

나는 말없이 동생 몫의 밥을 담아 동생의 자리에 놓았다. 동생은 의자를 끌어당겨 아버지의 옆자리에 앉았다. 나는 밑반찬을 깔고 손을 씻는 엄마를 기다렸다가 같이 앉았다. 자연스레 아버지를 마주 보고 앉게 되었다.

동생이 새로 놓아주었다는 난방 덕에 훈기가 도는 집 안의 저녁 식사에는 침묵 속 식기 달그락대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아버지는 스스로 수저를 쥐고 있었지만 스스로 식사를 하고 있다고 하기는 힘들었다. 아버지가 덜덜대는 손으로 밥을 조금 뜨면 엄마가 그 위에 아버지가 좋아하던 반찬을 올렸고, 동생이 아버지의 팔을 쥐어 그것을 아버지의 입으로 밀어 넣었다.

그 중 반절이나마 입으로 들어가면 다행이었다. 아버지는 간혹 밥을 뱉거나 씹지도 않고 입을 헤 벌린 채 밥알을 흘렸다.

나는 그 일련의 과정을 마치 공장 기계가 물건 찍어내는 일처럼 바라보았다. 그리고 뭘 하건 간에 자신의 손으로 해야만 했던 고집스러운 젊은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곧 밑반찬으로 눈을 돌렸다. 부추김치, 묵말랭이 무침, 어묵 볶음…, 파김치는 없네. 묵말랭이는 동생이 좋아하고 부추김치는 아버지가 좋아한다.

“엄마, 식탁이 바뀌었네. 새로 샀어?”

“작년에 새로 해드렸는데. 너무 낡았길래.”

윤호는 무심한 얼굴로 젓가락을 문 채 말했지만, 말 속에 날카롭게 갈린 뼈가 들어있는듯 했다. 집안 사정에 관심 좀 갖지? 하고,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윤호가 테이블 속에서 보였다. 윤호가 샀다는 새 테이블을 손끝으로 괜히 문질러 보았다. 때깔 좋게 빛나는 나뭇결에서 뽀득, 하는 소리가 났다.

우리가 밥 한 공기를 먹는 동안 아버지는 반 공기만 떠놓은 밥의 반절도 채 입에 넣지 못했다. 그래놓고도 ‘배부르셔요?’ 하고 엄마가 밥그릇에 손을 대자, 그녀가 자신의 소중한 식량을 빼앗아 가는 악당이라도 되는 듯 보였는지 아버지는 ‘저리 치워, 쌍년아!’ 하고 역정을 냈다. 엄마는 별 불편한 기색도 아니었다. 마치 그게 일상이라는 것처럼.

“커피이.”

식탁을 모두 치우자 아버지가 대뜸 커피 이야기를 꺼냈다. 어린아이처럼 말꼬리를 길게 늘였다.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였다. 가족원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아버지를 바라본 것은 아버지가 일평생 살면서 커피를 한 번도 마셔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멀뚱멀뚱 서로를 쳐다보다가, 아버지가 손에 들고 있던 리모컨을 내던지며 ‘커피!’ 하고 목적지 없는 분노를 표출하는 탓에 정신을 차렸다.

이 집에서는 엄마도, 아버지도 커피를 마시지 않아서 커피는 고사하고 커피 우유도 없었다. 나는 입고 왔던 코트를 그대로 다시 챙겨 입으며 ‘내가 사올게.’ 하고 엄마의 등 뒤에 말을 던졌다. 그러자 엄마는 허둥지둥 앞치마 수건에 손을 닦으며 같이 가, 했다. 엄마는 아직도 내가 이 근처에서 길을 잃을까 걱정인 모양이었다.

아직도 뭘 키우는지 알 수 없는 남의 밭들 사이에 난 길을 가로질러 20분을 걸어야 겨우 커피를 팔만한 구멍가게가 있다. 나는 나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엄마의 마른 손을 움켜쥐고 어둔 길을 걸었다. 달빛이 밝지만 그래 봐야 밤이었고 이 동네는 길에 불빛 하나 없었다.

“아버지가 갑자기 커피는 왜 찾으신담.”

“치매 환자들은 가끔 옛날에 있었던 강렬한 기억을 잊지 않고 담아두었다가 말하는 경우가 있다데.”

“커피는 한 번도 드셔보신 적 없던 양반이잖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한참 옛날 일을 떠올렸다. 엄마가 옛 기억 얘기를 꺼낸 것은 나와 같은 일을 떠올렸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온 가족이서 시내를 나왔을 때였다. 지금처럼 날이 추웠다. 나는 갓 초등학생이 된 무렵이었고, 엄마가 주시는 용돈을 항상 한 푼 두 푼 모아서 주머니에 짤랑대고 다녔다.

코끝이 아릿한 바람 너머로 보이는 자판기에는 언제나 어른들만이 마시는 커피를 뱉는 빨간 자판기가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느라 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던 아버지의 손끝이며 귀가 빨갛게 얼어있었고, 그게 눈에 들어오자 막연히 아버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따뜻하고 맛있는 것을 먹으면 아버지가 나에게 한 번쯤은 칭찬을 해줄 줄 알았다.

주머니에는 딱 커피 한 잔을 뽑을 수 있는 만큼의 동전이 들어 있었고, 그것으로 따뜻한 밀크커피 한 잔을 뽑았다. 흘리지 않느라 조심조심 아버지 앞에까지 걸어간 나는 차마 무섭던 아버지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아버지, 이거 드세요.’ 하고 커피를 내밀었다. 아버지가 그 커피를 마셨는지 어쨌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지만, 여튼 아버지는 무섭도록 무심한 얼굴이었고 나는 그 이후로 한 번도 아버지에게 커피를 뽑아다 드린 적이 없었다.

나는 시린 초겨울의 길을 엄마의 손을 꽉 붙들고 지나 슈퍼의 문을 밀어 열었다.

“어머, 요새는 무슨 커피가 이렇게도 많아?”

“서울에는 이것보다 더 많다.”

“뭘 사가면 좋다니.”

“뭘 사도 어차피 아버지는 뭐가 무슨 맛인지 모르실걸.”

“얘가 정말.”

아버지가 말한 ‘커피’가 무슨 ‘커피’인지 알 방도가 없어 엄마와 나는 한참을 커피 코너 앞에서 고민하다가, 노란색 박스에 든 제일 작은 사이즈의 인스턴트커피를 골랐다. 카운터의 아주머니는 나를 의아한 눈길로, 무슨 파란 눈의 외국인이라도 보는 것처럼 머리부터 허리께까지 천천히 훑어보았다. 카드도 받지 않는 불성실한 카운터에 3,000원을 내고 50원을 거슬러 받아 나오자 가로등도 없는 길이 온통 저물어 있었다.

“엄마, 있잖아.”

“너 또 서울 가잔 소리 하려구 그러지.”

“눈치도 좋아.”

“너네 아버지 두고 내가 어디를 가니.”

“아버지랑 같이 가야지. 아버지는 서울에 있는 요양원에 모시고 엄마랑 윤호랑 살고.”

차마 나랑 같이 살자는 말은 하지 못했다. 내 방은 내 몸을 누이기에도 충분치 않았다.

“요양원은 싫어. 아내가 되어서 남편을 직접 모셔야지 어떻게 남의 손에 맡기니.”

“또 옛날 사람 같은 소리 한다. 요즘은 다 요양원에 모신대. 시설도 엄청 좋고 밥도 잘 나온대. 언제까지고 엄마 혼자만 챙겨드릴 수는 없잖아.”

엄마는 별말 없이 내 손을 꼭 움켜쥐었다. 
밤길은 길고, 구불구불했고, 그래서 더 길었다. 시린 초겨울을 지나 희미한 전등 빛이 내리는 집이 멀리 보이기까지가 마치 영겁 같았다.

몇 년에 걸친 나와 동생, 그리고 엄마 사이의 공방은 지칠 줄을 몰랐다. 나는 홀로 남겨질 엄마가 불쌍했지만 엄마는 홀로 남겨질 아버지를 불쌍하게 여기고 있었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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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여대 소설창작론 ‘작가의 탄생’팀은 미래의 예비 작가 양성을 위해 “나 혼자 쓴다 – 웹소설 1억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지금은 웹소설 시대, 신춘문예의 계절 12월에 원고지대신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이번 테마는 ‘서울’. 서울이란 공간을 모티브로 서울에 사는 젊은이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희망을 쓰겠습니다.

-작가 변수정-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자란 인천 토박이. 서울에 가본 적이 학교 말고는 손에 꼽아서 소설 쓰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장르 구분 없이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읽던 초등학생 시절, 밀린 일기를 쓰면서 페이지를 채우기 위해 시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글을 잘 쓴다는 담임선생님의 코멘트에 자신감을 얻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먹고 살고,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 삶의 최종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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