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뼈 도둑 <3화>
[웹소설]뼈 도둑 <3화>
  • 윤애솔
    윤애솔
  • 승인 2016.12.2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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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여대 작가 양성 프로젝트

윤애솔

동생은 그새 또 코가 빨갛다. 차가운 손으로 내 손과 함을 겹쳐 잡아온다. 나는 오른손을 여적 빼지 않은 채로 동생에게 가보라고 고갯짓한다. 내 등 뒤로는 식은땀이 흐른다. 금방이라도 여동생이 언니, 그 손에 그거 뭐야? 라고 물어볼 것만 같아, 어찌해야하나 머리를 잔뜩 쥐어짜낸다.

다행히도 여동생은 금세 엄마에게 시선을 뺏긴다. 아빠를 힐끔 보아도 아빠도 하얀 엄마에게 다시 시선을 뺏긴 눈치다. 내 손에 담긴 엄마를 다시 한 번 꼭 움켜쥔다. 도둑질이라도 한 것 같아 자꾸만 손에서 땀이 난다. 손에서 엄마가 자꾸만 온 몸을 뒤틀며 도망치는 것 같다. 난 지금 그냥 엄마를 한 다발 움켜쥔 것뿐이라고 내게 속삭인다.

동생은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지 물끄러미 엄마를 내려다보다 하는 수 없이 발을 떼었다. 아빠는 그 꼴을 보며 또 한 번 눈가를 닦아냈다. 나는 그저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엄마의 온기가 다시 한 번 동생의 손으로부터 바람에 날아가기 시작했다. 동생은 펑펑 울면서 손가락 사이사이로 엄마를 흘려보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손가락에 달라붙는 엄마를 좀 더 꽉 다잡는다. 나는 아직 엄마와 함께 보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선선하게만 느껴지던 바람이 날카롭다.

***

장례가 모두 끝나고, 아빠가 차가운 땀이 차오르는 손으로 엄마의 사망신고를 하러 갔다. 그 전에 우리 가족 네 명의 등본을 열 장이나 뽑아놓아야겠다고 중얼거리며 나가는 뒷모습이 서러웠다. 아빠의 다시금 떨리는 목소리에, 집에서 입술을 씹으며 눈물을 참았다. 나는 아직도 외투를 집고 자켓 안에 엄마를 잡고 있는 채였다. 너무 오래 잡고 있어서 손이 다 아리고 저렸다. 금방이라도 엄마를 포기하고 놓아버릴 것만 같았다.

집은 아직도 엄마 냄새가 가득 배어있는 방이 있고, 냉장고를 열면 솜씨 좋은 엄마가 잔뜩 해다 놓은 반찬들이 가득하다. 나는 반찬에도, 향수 냄새에도, 엄마 베개에도, ‘전정희’가 적힌 두꺼운 일기가 생각나 자꾸만 몇 번이나 눈을 질끈 감았다. 다정하고 사랑스러웠던 엄마가 사고로 돌아간 것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을 하게 되고, 그동안 엄마가 내게 들려줬던 사랑을 부정하게 되는 내가 끔찍했다.

이제는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 일기를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엄마를 부정하는 일이, 그늘 한 점 없는 벤치에서 발가벗고 따가운 햇살을 온 몸으로 맞는 기분이었다. 기운 없이 누워있는 동생에게 또한번 나갔다 오겠다고 말했다. 동생은 물끄러미 나를 쳐다본다. 어딜 가느냐는 눈치도 아니고, 무얼 할 건지 궁금하지도 않은 눈치였다. 그러나 나가는 것은 싫은 듯 옷자락을 잡아온다.

난 한쪽 손으로 동생의 손을 잡는다. 한쪽 손에는 동생이 잡혔고, 다른 쪽 손에는 엄마가 잡혀 있었다. 기분이 이상해 금방 동생의 손을 놓았다. 밖에 바람 좀 쐬고 금방 올게. 자고 있어. 동생은 아무 말 없이 지친 듯 고개를 끄덕이고 소파에 눕는다. 어린 애처럼 엄마의 베개를 끌어안은 채다. 나는 그 베개에서도 ‘전정희’란 글씨가 보이는 것만 같아 아까보다 급하게 집을 나선다.

***

집 밖 아파트 단지엔 낡은 농구장이 있었다. 새 농구장이 지어진 이후로는 아무도 오지 않는 을씨년스러운 농구장이다. 나는 여기가 좋겠다고 생각하며, 사실 어디든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그새 빠져나와 한 손 부족하게 차 있는 엄마를 바깥으로 꺼내든다. 여전히 하얗고 고왔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묵묵한 그 모습에 울컥 무언가가 치민다.

쪼그리고 앉아 엄마를 바닥에 내려놓는다. 이제는 온기도 없는 그냥 뼛가루의 모습이다. 괜히 초라해 보여 한숨이 난다. 그리곤 가방을 꺼내들어 가방에 든 것들을 위에 쏟았다. 엄마의 불가리향수가 조금 깨졌는지 요란한 향기를 내며 바닥을 구른다. 다시 집어와 엄마의 위에 얹었다. 엄마의 일기장은 왠지 더 멀리 떨어져있다. ‘전정희’가 적힌 일기장을 엄마 위에 똑바로 얹는다.
잘 보라는 뜻이었다.

아까 아빠 책장 위에서 주워온 라이터를 꺼내들었다. 기름이 부족한 지 잘 안 켜지는 라이터에 가까스로 불을 붙이고, 일기장에 그 불을 옮겨 붙게 했다. 낡고 두꺼운 일기장은 그새 습기를 먹었는지, 아니면 미련이라도 남는지 더디게 사그라든다. 참을 수 없어 라이터로 한 번 더 반대쪽 모퉁이에 불을 붙였다. 엄마가 아끼던 인형도, 엄마 손수건도, 엄마 성경책도 어느 새 불이 금방 옮겨 붙는다. 금방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빨갛게 되는 것에 몇 발짝 뒤로 물러서서 그 모습을 눈 한번 감지 않고 지켜봤다.

금방 다 타버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타는 게 더뎠다. 기름이라도 사올 걸 하면서 그 꼴을 지켜봤다. 종이가 이리저리 춤을 추며 쪼그라든다. 마지막 발악 같아 헛웃음이 난다. 이제는 엄마가 아니라 엄마 일기장에게로 원망이 쏘아진다. 그러게 잘 숨어있지 그랬어, 그러게 세월에 못 이긴 척 다 찢어져 버리지 그랬어….
엄마의 성경책도 비명을 지르며 불길 사이로 스며든다. 나는 눈물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엄마의 일기장이 어느 새 다 까맣게 익었다. 다른 물건들도 불길에 못 이겨 까맣게 물들었다. 불길이 이제 태울 것이 없어 점점 사그라드는 모습을 보면서 그 더미를 짓밟았다. 까맣게 물든 물건들이 이젠 형태도 알아볼 수 없게 가루가 된다.

그 와중에도 ‘전정희’는 아직 남아있는 것 같아 더욱 힘차게 발길질을 한다. 힘차게 발로 불씨를 다지다 보니 어느 새 까만 재와 나만이 남았다. 겨울 해는 어느 새 금방 져버렸다. 갑자기 찾아온 어둠 속에서 나는 다시 그 앞에 쪼그려 앉는다. 검은 재들 사이에도 뼛가루는 하얗게 완연하다.

나는 그것들을 발로 흩어 보내려다 그만둔다. 굳이 내가 건드리지 않아도, 바람과 눈으로 이미 바스라질 더미였다. 괜히 시선이 떨어지질 않아 까맣고 하얀 그 더미를 얼마간 쳐다봤다. 마치 엄마와 눈을 마주하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 걸었다. 이제 정말 끝이라고 생각하면서 걸었다. 엄마에게 더 이상 무얼 물어도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왜 서울에서 사고였는지, 왜 서울로 교회를 우겨서 다녔는지, 왜 일기에는 서울이 가득한 건지. 그리고 나는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내 신발에서 어둠처럼 떨어져 나오는 잿가루를 보며 생각한다. 서울은 다신 가지 않겠다고.

그 길로 나는 집에 들어가 내 서랍을 뒤진다. 여기쯤이었던 것 같은데, 금세 익숙한 종이수첩이 손에 잡혔다. 노란 색 통장이었다.

나중에 혹시나 하게 될 내 결혼을 위해 모아둔 통장. 통장 내역을 살펴보니 어느 새 사천이다. 스물다섯에 이 정도면, 뭐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정도면 뭐든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손가락으로 ‘박영원’이라 써진 통장을 쓸어내렸다. 아까 그 잿더미에서 마주쳤던 엄마의 눈이 생각난다. 어둠 속에서 이제는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없는 눈. 나는 통장과 내 짐을 들고 집을 나섰다.

집에 내 짐이 한가득인 줄 알았는데, 막상 챙길 건 옷가지 몇 개와 화장품 몇 가지뿐이다. 그것마저도 다 챙기진 않았다. 그러나 아빠의 라이터는 잠시 생각하다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오늘은 달도 뜨지 않았는지 하늘이 온통 잿가루처럼 까맸다. 아파트를 나서다 말고, 달이 없음이 아쉬워 고개를 들고 잠시 서있었다. 이내 놀란 발걸음이 들린다. 다급한 소리를 내며 뒤따라온 동생이 어딜 가느냐고 외친다. 나는 빛을 빨아들인 하늘에 여전히 시선을 고정한 채로 중얼거린다.

언니 여행 가려고. 서울도 아니고, 파주도 아닌 곳으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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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여대 소설창작론 ‘작가의 탄생’팀은 미래의 예비 작가 양성을 위해 “나 혼자 쓴다 – 웹소설 1억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지금은 웹소설 시대, 신춘문예의 계절 12월에 원고지대신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이번 테마는 ‘서울’. 서울이란 공간을 모티브로 서울에 사는 젊은이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희망을 쓰겠습니다.

-작가 윤애솔-

파주완 전혀 상관없는, 소개할 것이 에버랜드밖에 없냐고 놀림 받는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소설을 쓰게 된건,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가 멋지고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 멋지고 대단한 일을 따라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직 세상 물정을 덜 경험해서인지 장래희망이 너무 많아, 적으면 원고지 열 장은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즘 ‘편순이’ 일을 하면서는 ‘절대 서비스직은 하지 말아야지’ 하고 하루에 열 번씩 다짐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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