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동수가 바람났다 <1화>
[웹소설]동수가 바람났다 <1화>
  • 조다슬
    조다슬
  • 승인 2016.12.26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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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여대 소설창작론 ‘작가의 탄생’팀은 미래의 예비 작가 양성을 위해 “나 혼자 쓴다 – 웹소설 1억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지금은 웹소설 시대, 신춘문예의 계절 12월에 원고지대신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이번 테마는 ‘서울’. 서울이란 공간을 모티브로 서울에 사는 젊은이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희망을 쓰겠습니다.

조다슬  

동수가 바람났다.

그녀가 태어난 1988년, 가장 많이 등록된 여아 이름은 ‘지혜’다. 그녀의 이름 ‘지혜’. 몇 학년 때이던가_ 아마도 초등학교 4학년 내지 5학년 일 적에_ 한 반에 지혜가 셋이던 적도 있었다. “어머, 우리 반에는 지혜가 셋이나 있네.”라는 말로 새 학기 첫날을 시작하던 그 늙은 선생은, 세 명의 지혜들에겐 그것이 정말로 끔찍한 말이라는 걸 이제는 아셨을까.

붉은 립스틱으로도 가리지 못한 선생님의 주름진 입술, 그 양끝에 자꾸만 차오르는 침방울을 바라보며 지혜는 간절히 바랐다. ‘조금 더 특별한 이름을 가지고 싶다. 조금 더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다. 사람은 이름 따라간다고, 지혜의 인생은 흔하기 그지없었다. 성적도 중간, 달리기를 해도 중간, 키도, 그림도, 글도 중간. 아마 숨 오래 참기 기록이나 얼굴 가로 길이를 쟀어도 그녀는 중간이었으리라.

2016년, 29살의 지혜는 계속해서 흔하디흔하게 살고 있다. 그저 그런 대학과 적당한 회사, 얇고 넓은 인간관계와 몇몇의 깊은 친구들을 가진, 지극히 평범한 29살 대한민국 여자로. 그러나 이제 그녀는 이것이 좋다. 평범한 것.

그렇게 평범하게 살기 위해 어찌나 애를 썼는가. B+, 3.6점의 학점을 받기 위해 시험 기간이면 도서관에서 밤을 새웠고, 적당한 회사에 들어오기 위해 68개의 고만고만한 회사들에 이력서를 냈다. 매일 아침, 눈에 띄지 않으며 단정한 옷을 고르기 위해 15분씩 고민을 하고 아주 평범한 흑갈색의 생머리를 유지하기 위해 2개월에 한 번씩 뿌리염색, 6개월에 한 번씩 스트레이트 파마를 한다.

커피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니면 카페라테, 조금 특별한 날엔 커피 모카. 0.6초 남짓 주인공을 스쳐 지나가는 엑스트라 같은 존재. 그것이 지혜의 몫이었으며 매 순간 주인공들은 그녀를 지나치고 있었다.

14년 전, 지혜와 같은 반이었던 미진은 진한 화장을 하고, 맨 뒷자리에 앉고, 유명한 언니 오빠들과 어울렸다. 무서울 것도 걱정도 없는 것만 같았던 그녀는 지혜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미진은 그녀답게 고등학생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그녀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헤어지고 만나는 것을 반복했다. 한낱 평범한 학생인 지혜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만큼 미진과 친하지는 않았지만, 미니 홈페이지에 그녀가 올리는 글들을 통해 그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고등학교를 채 졸업하기도 전, 그녀가 임신했다는 소문이 돌더니 미진이는 별안간 사라졌다.

그 후 여러 사람의 입에서 미진은 성공한 쇼핑몰 CEO가 되기도 했고 요구르트 아줌마가 되기도 했으며 심지어 어느 재벌 3세의 여자 친구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소문들은 늘 “내가 봤는데,”가 아닌 “누가 봤는데”로 시작했다.

그 이후, 지혜에게 선망의 대상은 은하였다. 그녀는 반에서든 학교에서든 1등을 놓치지 않았고, 조회시간 세 번 중 한 번은 앞에 나가서 상장을 받았다. 지혜는 우연히 그녀와 짝꿍이 된 이후로 꽤 친하게 지냈는데, 졸업 후 은하가 유학을 가는 바람에 서서히 연락이 끊겼었다.

그러다 재작년 봄, 은하는 문득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했는데 남편은 11살 연상의 성형외과 의사라고 했다. 그리고 정확히 반년 뒤, 그녀는 이혼 소식을 전했다. 강남역의 한 2층 카페에서 그녀는 거품이 잔뜩 올라간 시나몬 카푸치노를 마시며 유쾌하게 말했다. “남은 거라곤 조금 높아진 코와 가슴뿐이야. 그래도 그게 남아서 다행 아니니? 아이나 빚이 남은 건 아니잖아”은하가 이혼한 것은 그저 작은 시련일 뿐이다. 모두 그렇게 은하의 이야기를 했다. 동창들이 모이는 날이면 미진과 은하의 이야기는 꼭 한 번씩 나왔고 그들은 주인공이었다.

그들에 비해, 너무나 평범한 지혜의 매 순간과 그것이 모여 만들어진 하루는 그다지 순탄하지 않았다. 좋은 순간보다는 힘든 순간이 더 많았고, 좋은 사람보다는 나쁜 사람이 더 많았다. 그래서 평범했다. 그리고 그중에 유난히 버거운 날, 지혜는 동수를 만났다.

그날은 지혜의 58번째 이력서가 버려진 날이었다. 지혜가 그것이 버려지는 것을 본 것은 아니었으나, ‘죄송합니다.’로 시작하는 문자를 받았으니 아마도 그것은 버려졌을 것이다. 전날 지혜는 친구의 생일을 맞아 술을 진탕 마셨고 그녀는 그것의 여파로 오전 9시 정각에 도착한 그 문자를 오후 12시 하고도 17분에 확인했다. “난 쓰레기야.” 그래, 그럴 만도 했다.

그녀는 울렁이는 속과 그것보다 심각한 두통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 “괴로워하지도 마. 그런 생각도 하지 마. 넌 그럴 자격도 없어.” 밀려드는 구역질을 꾸역꾸역 참아가며 지혜는 던져버렸던 핸드폰으로 손을 뻗었다. 그녀는 반성해야 할 때 SNS를 본다. 성공한 친구, 여행 중인 후배, 좋은 선물을 받은 친구의 친구.

행복하게 굴러가는 세상과 그렇지 않은 자신. 반성하기 최적의 조건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면역이 되었는지 지혜는 무의식적으로 SNS를 내리고 있다. 그러다 나온 사진 한 장. 친구 중 하나가 올린 어제의 단체 사진 속 지혜는 없다. ‘하필 화장실 갔을 때 찍고 그러냐. 치사하게.’ 89 정도 비참했던 기분이 92 정도 비참해졌다.

그때 온 문자 한 통. 

「잘 들어가셨나요? 일어나시면 문자 주세요.」

‘잘못 보낸 건가. 이건 뭐지’ 하는 순간, 산발적으로 떠오르는 어제의 기억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비틀거리다 하수구에 끼여 버린 굽. 그걸 빼려고 몸을 젖히는데, 급작스럽게 흔들리는 세상에 같이 요동치는 속. 그 순간 누군가 말을 건다.

“괜찮으세요? 도와드릴까요?”

그 사람을 잡으면 흔들리는 세상이 멈출 것만 같았다. 멱살을 냅다 잡는 순간. “욱!” 동시에 굽이 ‘뚝’. 거기까지 떠오른 지혜는 눈을 질끈 감았다. ‘정말 미안하지만, 액땜했다고 치세요.’ 지혜는 답장하지 않을 심산이었다. 비참함이 97까지 올라간 지금, 그것마저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없었던 일이다.’

그런데 시선을 돌리자 현관문에 보이는 남자 구두 한 켤레. 지혜는 답장할 두 가지 이유가 생겼다. 첫째, 구두를 돌려줘야 한다. 둘째, 옷에 오바이트까지 한 처음 보는 여자에게 구두를 선뜻 벗어주는 그 사람이 궁금하다. 그렇게 지혜와 동수는 만났다.

지혜는 그의 많은 것이 좋았다. 지혜가 구두를 건넬 때 그가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한 것이 좋았다. 웃을 때 시선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콧잔등이 찡그려지는 것이 좋았다. 바람에 머리가 흐트러져도 자꾸만 매만지지 않는 것이 좋았다. 무엇보다도 그가 미진이나 은하보다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인 것이 좋았다.

그는 동수였다. 이름을 대면 3초 뒤 생각이 날 만한 회사에 다니는 동수는 지혜보다 3살이 많았다. 늘 같은 길이의 댄디 컷에 주말에도 셔츠를 입었고, 날이 추워지면 그 위에 스웨터를 겹쳐 입었다. 눈썹은 짧고 굵었고 눈 밑에는 어울리지 않는 도톰한 애교살이 있었다.

지혜에게 지극정성인 것은 아니었지만 아프다면 약을 사 들고 올 정도의 정성은 보이는 것 같았다. 그들의 데이트는 영화관, 카페, 조금 힘들었던 날에는 맥줏집. 일 년에 한 번 벚꽃구경, 불꽃놀이 축제. 늘 비슷한 밥집, 특별한 날에는 새로운 레스토랑. 그렇게 지혜와 동수는 2년 3개월 동안 11개의 계절을 보냈다. 이제 지혜 나이 스물아홉, 동수는 서른둘. 무난히 만나고 무난히 다투고 무난히 화해하는 그들은 그렇게 결혼할 것 같았다.

그런데, 동수가 바람났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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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조다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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