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이방인 <3화>
[웹소설]이방인 <3화>
  • 변수정
  • 승인 2016.12.26 11: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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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여대 작가 양성 프로젝트

변수정

집에 돌아오자 동생이 소파에 앉은 아버지의 손이며 발을 꼭꼭 주물러주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를 주물러드린다는 일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딸이고 동생은 아들이기 때문이었을까? 엄마는 가끔 내게 내가 태어난 후 당신의 시댁이 얼마나 나를 싫어했는지, 엄마를 얼마나 괴롭혔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서른이 다 되어서 낳은 늦둥이 딸을 두고 엄마의 시댁 식구들은 애물단지니, 여자애인 줄 알았으면 진작 뗐다느니 하며 악담을 퍼부었고, 엄마에게는 그 나이 먹도록 아들 하나 낳지 못할 거라면 나를 들고 집을 나가라는 소리를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내가 옆에 있는 것도, 나를 데리고 친가에 가는 것도 싫어했다. 그래서 나는 원래 딸은 명절에 친가를 못가는 줄 알았다.

찬바람에 코끝이 빨갛게 얼어붙은 것을 손끝으로 주무르며 부엌으로 들어왔다. 회사에 ‘신입 여자 사원’ 딱지를 달고 들어가면 할 수 있는 것은 복사기 다루는 것과 회의 인원대로 커피 타기뿐이고, 그런 회사들을 전전하며 늘어난 것은 인스턴트커피를 기가 막히게 타는 실력뿐이었다. 습관처럼 쟁반 위에 커피 네 잔을 탔다.

쟁반을 조심조심 받쳐 소파 앞의 낡은 테이블에 올릴 때까지 아버지는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였다. 여전히 전국 노래자랑을 보고 있었다. 해… 저어문… 소오양… 강에…. 귀에 익은 노래는 비단 미디어에서만 접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간혹 시내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날이면 통닭 튀긴 것을 손에 들고 오고는 했다. 들고 오는 동안에 다 식어 빠지고 눅눅해진 닭이 든 노란 봉지를 들고 무엇이 그렇게 기분이 좋으셨는지는 몰라도 아버지는 늘 노래와 함께 문을 밀어 열고 들어왔다.

아버지는 언제는 소양강 처녀였고 언제는 동백 아가씨였으며, 울고 넘는 박달재를 갔다가 이별의 부산 정거장에도 갔다. 그러다가 가끔 내 앞에 앉아서 요년, 너만 아니면, 이년, 하면서 섧게 울고 땅을 짐승처럼 내리쳤다. 나는 그게 꼭 나 대신에 땅을 때리는 것 같아서 오싹오싹했다.

“아버지, 커피요.”

아버지는 우물대며 노래만 따라 부를 뿐, 커피에 신경을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나는 커피 한 잔을 동생에게 건네고 아버지 곁에 앉았다. 소파에 동생과 아버지, 나. 이렇게 셋이 나란히 앉았다. 동생은 줄곧 아버지의 손을 주물렀고, 나는 어색한 얼굴로 TV 화면만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흘긋 아버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기적적으로 눈이 마주치는 일 없이 아버지는 낡은 TV 화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갑작스레 용기가 솟았는지, 손을 뻗어 아버지의 손을 살짝 덮었다.

“아버지.”

“…”

“아부지, 정신 들면은 엄마더러 서울 가자고 해요.”

“…”

“엄마 고생 좀 덜 시키게. 응?”

“…야.”

“네에?”

잇몸과 입술만 남은 입으로 우물대는 소리는 통 단번에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아버지 쪽으로 고개를 조금 가까이 숙였다. 노인 특유의 군내가 확 끼쳐왔다.

“여기가 내 서울이야.”

나는 그대로 굳은 듯 멈춰 있다가, ‘누나 커피 잘 끓이네.’ 하는 소리에 현실로 돌아왔다.
아버지는 커피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아버지의 손등에서 손을 떼고 나는 커피 두 잔을 손에 쥔 채 부엌을 서성였다. 한 잔을 설거지하는 엄마 곁에 놓고, 한 잔은 식탁에 기대어 조금씩 속을 삭이듯 내 목구멍에 밀어 넣었다. 설거지를 마친 엄마가 앞치마에 꼼꼼히 손을 닦고, 싱크대 위로 튄 물기를 행주로 훔치더니 곧 커피를 손에 쥐고 내게 다가와 엉덩이를 툭툭 두드렸다. 우리 딸이 다 커서 커피도 탈 줄 아네. 그리고는 곧장 소파로 가 아버지의 곁에 앉았다.

그러니까 이제는 동생과 아버지, 엄마 순서로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낡은 가죽 소파의 등받이 위로 세 개의 머리통이 동그랗게 올라와 있었다. 작은 소파는 세 명이 앉으면 꽉 들어찼다. 나는 엄마의 집 안에서 동생이 산 테이블에 기대어 아버지에게 드리려고 사 온 커피를 입에 물고 있었다. 고개를 조금 빼밀어 바라본 트레이에는 아버지 몫의 커피가 아직 가득하게 찰랑거렸다. 한 모금도 드시지 않았다. 아마 내가 집에서 나갈 때까지 커피는 한 모금도 줄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는 그냥, 식후에 커피를 마시는 TV 속의 사람들을 보고 대뜸 커피가 마셔보고 싶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의 기억에 내가 있을 거란 기대를 했던 내가 바보같이 느껴졌고, 어쩐지 이 안에서 맞지 않는 한 짝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분명히 가족인데도 외부인이라도 된 양 어색했다. 나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식어버린 종이컵을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엄마, 나 이만 가볼게.”

“더 있다 가지 않구. 자고 가는 거 아녔어?”

“으응, 어. 바빠서. 내일은 일찍 일어나야 해.”

“누나, 정류장까지 데려다줘?”

“아냐, 괜찮아. 혼자 갈게.”

입고 왔던 코트를 주워 두르고 엄마가 들려준 쇼핑백을 품에 안았다. 락앤락 통이 몇 개 들어있었다.

“아버지, 저 이만 가볼게요.”

내 집에서 나가, 이 년아! 발음이 다 뭉개져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 호통은 이제 별로 무섭지도 않았다. 윤호야, 나 갈게. 엄마, 나 이만 가요. 도착하면 전화할게요. 나오지 말아요. 춥잖아요. 나는 엄마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며 구두를 꿰어 신었다.

시린 초겨울의 굽이는 코끝이 뜨끔거릴 정도로 싸늘했다. 어쩐지 겨울 코트를 목 끝까지 여민 채 외국의 길을 따라 걷는, 영화 속의 이방인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마을은 변하지 않은 채 나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을 텐데, 아니면 최소한 그냥 그대로 있었을 뿐일 텐데 나는 홀로 이방인이 되어 발을 들인 것이다.

2호선 내선 순환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서울에서의 내가 외지인이 아닌 것은 아니다. 서울에 특별히 발붙이고 잘 친구가 있는 것도, 마음 놓을 애인이 있는 것도 아니며, 혈연이 있지도 않다. 혈혈단신으로 올라와 누구보다도 이방인 같은 상태로 5년을 지냈다.

을지로 4가, 3가, 입구, 시청….

6시간 지속된다던 손난로는 어느새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무릎 위에 놓고 끌어안은 쇼핑백에서 움직일 때마다 반찬 냄새가 풍겼다. 얼굴이 목부터 귀 끝까지 달아오르고 금방이라도 내리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어떻게 앉은 열차인데. 몇 정거장만 철판을 깔고 가기로 했다.

충정로, 아현, 이대….

퇴촌의 버스였다면 누가 통닭을 들고 타도 별말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누가 물으면 그렇다는 대답은 차마 못 하겠다. 젊은 사람들은 아무도 없고 기껏해야 귀농을 결심한 50대 부부가 제일 젊은 취급 받는 곳이다. 나는 늘 그곳에 나를 위한 미래가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면 서울에는, 합정에는 있나?

신촌, 홍대 입구, 합정….

세 정거장을 지나는 동안 확답하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부추김치 냄새가 물씬 풍겼다. 나는 민망함과 함께 황급히 열차에서 내려 자취집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으로 달아나기라도 하듯 종종걸음을 쳤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생각하느라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엄마가 주신 반찬을 부끄러움의 덩어리로 안고 가는 것이 내가 이곳의 이방인이라는 사실에 신빙성을 더해주는 것만 같았다. 내가 퇴촌면에서도 외지인이고 서울에서도 이방인이라면 나의 발붙일 곳은 그럼 어디지? 버스를 오르고 내리는 발밑에 타르를 한 움큼 묻힌 것처럼 무거웠다.

“응, 엄마. 도착했어. 응. 냉장고에 넣을게. 응. 알았어, 잘 자.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조막만 한 방 안은 옷가지가 널린 작은 행거와 부엌 역할을 하는 작은 싱크대, 미니 냉장고, 노트북을 올려둔 미니 테이블과 삼단 접이식 요가 자리 잡고 나면 내가 제대로 밟을 공간도 거의 없었다. 나는 인스턴트로 찬 냉장고 안에 부끄러움을 욱여넣으며 가만히 생각을 삼켰다.

나는 화장을 지우고 옷을 대충 벗어놓은 채 전기장판 위로 올라갔다. 어쩌면 이 위에서 꾸는 외딴 섬의 꿈이 나를 모든 곳에서 이방인으로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아니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하는데? 나도 몰라.
그래, 이 공간은 생각을 하기에도 부족하고 나는 최소한 8시간 뒤에는 출근을 준비해야 한다. 나는 눈꺼풀로 눈동자를 덮어 시야에 걸리는 모든 것을 차단했다. 잘 자, 이방인. 내일 보자.

나는 어쨌든, 홀로 딛고 선 외딴 섬의 꿈을 꾸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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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여대 소설창작론 ‘작가의 탄생’팀은 미래의 예비 작가 양성을 위해 “나 혼자 쓴다 – 웹소설 1억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지금은 웹소설 시대, 신춘문예의 계절 12월에 원고지대신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이번 테마는 ‘서울’. 서울이란 공간을 모티브로 서울에 사는 젊은이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희망을 쓰겠습니다.

-작가 변수정-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자란 인천 토박이. 서울에 가본 적이 학교 말고는 손에 꼽아서 소설 쓰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장르 구분 없이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읽던 초등학생 시절, 밀린 일기를 쓰면서 페이지를 채우기 위해 시와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글을 잘 쓴다는 담임선생님의 코멘트에 자신감을 얻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먹고 살고,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 삶의 최종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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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예진 2017-01-16 13:29:06
잘 읽고 있어요 재미있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