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당연한 상파울로 <2화>
[웹소설]당연한 상파울로 <2화>
  • 이본느
  • 승인 2016.12.23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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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여대 작가 양성 프로젝트

이본느

단 아래 놓인 국화를 하나 챙겨 들고 무작정 바깥을 향해 뛰었다. 장례식장은 어수선해서 나 하나쯤 도주하는 것은 커다란 소동이 아니었다. 모리는 영문을 모르고 나를 뒤쫓았다.

나올 때까지도 메탈 밴드의 공연 소리는 이어지고 있었지만, 여자는 노래를 따라 부르지 않았다. 침묵한 채 새우깡 봉지로 손을 뻗어 주먹 가득 과자를 쥐고는 입이 미어지게 욱여넣었다. 여자가 너머로 멀어지도록 밴드 보컬의 쉰 듯한 목소리는 귓전을 맴돌았다. 우리는 숨이 차서 더는 뛸 수 없을 때까지 달렸다. 지하철역이 가까웠다. 모리는 무릎에 손을 짚고 숨을 헐떡이며 내게 물었다.

어디 갈 건데. 홍대?
홍대.
상파울로?
상파울로.

어설픈 상복 차림에 국화꽃 한 송이를 들고 우리는 상파울로로 향했다. 그곳은 내가 담배를 처음 배운 공간이었다. 모리와도 유라와도 자주 만나, 대부분 시간을 함께 보낸 곳이었다. 우리는 다 같이 만난 적이 없었지만 그 장소를 공유했던 것만큼은 틀림없었다. 지하철은 출근하는 사람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우리는 비좁게 선 사람들 틈에서 향냄새를 풍기며 어색하게 섰다. 가는 동안 모리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갑작스럽게 자릴 떠서 유라의 부모님이 우릴 조의금을 훔쳐 달아났다 생각한다, 어서 돌아오라는 내용이었다. 모리는 그런 게 아니라며 해명하기 바빴다. 몇 번의 통화를 마치며 홍대로 가는 동안 나는 그곳을 떠올렸다.

*
시끌벅적한 거리에 입간판이 하나 나와 있다. 입간판엔 등이 켜있다. 자줏빛 바탕색 위로 카페 이름이 쓰여 있다. 커피의 명가― 상파울로. 하얀 글씨는 먼지나 날벌레가 끼어 얼룩덜룩하다. 가게에 가기 위해서는 지하로 한 층 내려가야 한다. 계단은 폭이 좁지만 가파를 정도는 아니다.

내려가는 길의 벽면엔 나무판자가 툭툭 덧대어져 있어 단숨에 거리로부터 멀어지고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다는 기묘한 느낌이 든다. 누수가 있던 탓에 천장 부분의 나무는 짙은 빛으로 물 얼룩이 남았다. 층계를 다 내려간 후, 한 번 모퉁이를 돌면 가게 문이 나온다.

들어선 카페에선 담배 냄새가 훅 끼쳐온다. 입구에서 가까운 자리에 금연 팻말이 놓인 테이블이 두 개쯤 있다. 그 테이블을 제외한 나머지 자리는 모두 흡연이 가능한 테이블로 재떨이가 놓여있다. 별달리 칸막이는 없다. 조명은 적당할 정도로 어둡다. 사장은 인사를 건넨다. 가게 안엔 익숙한 얼굴들이 몇몇 있다. 모리도 유라도 저만치 구석에 앉아 있다. 주홍빛 조명이 달린 씰링팬이 천장에 달려 있다. 오래된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실내 구조다. 벽지는 낙서로 빼곡하다.

어딘가엔 내 이름이 있고, 네 이름이 있는 곳이다. 나도 화장실로 가는 길목의 모퉁이에 매직으로 재희♡유라, 와 같은 낙서를 했다가 까맣게 칠해 지운 적이 있다. 앉으면 엉덩이가 푹 꺼지는 빨간 소파엔 금색 자수가 놓인 화려한 꽃무늬가 있다. 가게 안은 온통 그런 소파뿐이다. 유라는 그 소파를 좋아한다. 몸을 잔뜩 늘어뜨리며 앉아, 쿠션을 끌어안고 내게 기대면 불면은 금방 달아난다고 했다.

소파와 소파 사이에 이따금 있는 작은 책장엔 만화책이 꽂혀있다. 누구나 이름을 대면 알 법한 오래되고 유명한 만화들이다. 종이가 누렇게 뜬 만화들은 귀퉁이가 닳아 해져있다. 몇 권을 읽다 보면 사이사이 비는 권도 있다. 중간이 빈 시리즈는 처음부터 이가 빠진 건지, 아니면 누군가 읽다 집에 들고 간 것인지 알 수 없다. 더러 몇 몇의 책들은 주인공의 이름도 가물거릴 쯤 꽂혀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젠가 이가 빠져 읽지 못했던 시리즈를 마저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모리와 나는 홍대역 9번 출구로 나와 던킨 도너츠를 끼고 모퉁이를 돌았다. 먼저 앞서가던 모리가 우뚝 멈추어 섰다. 나는 그 뒤를 쫓다 마찬가지로 모리의 옆에 멈추어 섰다.

우리가 몇 해나 봐 왔던 입간판은 거리 어디에도 없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길목의 나무판자들은 전부 다 떼어졌다. 흰색 페인트가 깔끔하게 발려진 입구가 보였다. 특유의 콤콤한 냄새가 나는 것 같은 분위기는 어디에도 찾기 힘들었다. 상파울로는 거기 없었다. 전혀 다른 이름과 분위기를 내 건 카페가 그 자리에 있었다.

실내 흡연이 될까?
음…. 아니.

모리와 나는 입구에서 담배를 연달아 피웠다. 맛이 유독 썼다. 둘 다 말없이 성에 찰 만큼 담배를 피우고는 아래로 내려갔다. 가게는 지하라는 사실을 잊을 만큼 밝은 조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층고를 높이기 위해 요즘 유행하는 노출 콘크리트 시공을 하고 흰색 페인트로 마감했다.

천장이 훤히 드러나 배수관이나 가스 파이프 같은 것들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실내가 넓어 보이기 위한 전략이었다. 우리는 아주 잘 아는 곳이 아주 모르는 곳이 되어버려, 촌닭처럼 주변을 휘휘 둘러보기 바빴다. 어디에도 촌티 나는 빨간 소파는 없었고 벽면 가득한 낙서도 없었다.

이른 시간이라 가게에는 우리 말고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더욱 생소했다. 카운터에 선 직원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우리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메뉴를 주문하고 자리로 가 앉으려는데 직원이 나를 불러 세웠다.

선불이세요.
아, 선불. 그게. 아. 잠시만요. 지갑이 어딨더라.

상파울로를 제외한 보통의 카페가 선불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나는 난처하게 웃어 보이고는 지갑을 꺼내려 했다. 그러자니 손이 불편했다. 들고 있던 국화꽃을 어쩔까 하다, 귀에 꽂았다. 그제야 국화 향이 조금쯤 나는 것 같았다. 직원이 나를 이상스럽게 바라보는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갑보다도 먼저 부스럭거리는 봉투가 손에 채였다. 부조금을 담은 봉투였다. 국화를 훔치는 탓에 내지 못하고 나온 것이었다. 나는 그 봉투를 내밀었다. 직원은 만 원을 꺼내더니 계산을 하고 내게 봉투를 돌려주었다.

만 원권 한 장만 주시면 되는데요.
혹시 상파울로가 어디 있는지 아세요?
네? 상파울로요?
네. 상파울로요.
음…. 브라질에 있겠죠.

나는 무엇도 물을 수 없었다. 커피 주문을 했을 뿐인데 뒷골이 지끈거릴 만큼 머리가 아파졌다. 근조. 자리에 앉자 모리가 봉투에 쓰인 글자를 읽었다. 인터넷에서 보고 두꺼운 펜으로 봉투에 삐뚜름히 쓴 한자였다. 너는 얼마를 냈느냐고 묻자, 모리는 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 정말로 어떤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거라면서. 근조. 나도 봉투에 쓰인 글자를 읽고는 테이블 위로 봉투를 툭 던져 올려놓았다.

이 돈 다 쓰고 집에 가자.
그럼 옷부터 살래. 너는 너무 칙칙하고 나는 너무 엉터리야.

모리가 자신의 직원복에 프린팅된 엉터리 생고기 로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사이 커피가 나왔다. 아메리카노 두 잔이요, 해서 우리는 자리를 지키고 커피를 기다렸다.

우리는 카운터 쪽을 멀뚱히 바라보았고 직원은 이쪽을 향해 다시 한 번 크게 외쳤다. 아메리카노, 두 잔, 나왔습니다. 그제야 우리는 후다닥 일어나서 커피를 받아 왔다.

일회용 잔에 담긴 커피는 신맛이 지나쳐 입에 맞지 않았다. 그것은 모리도 마찬가지였는지 몇 모금 마시지 않고 내려놓았다.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나는 손에 낀 반지를 만지작거리다, 이번에도 반지를 돌려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영 돌려줄 수 없다는 것도. 나는 반지를 빼, 일회용 잔 옆에 뒀다. 귀에 꽂아둔 국화도 자리에 내려놓을까 하다, 그대로 둔 채 일어섰다. 헌화를 한다면 상파울로에 하고 싶었다. 여긴 상파울로가 아니었다.

가자.

앉은 지 얼마 안 되어서 일어서자, 의아해하는 직원의 시선이 느껴졌다. 지상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는데, 보통의 카페에서는 다 마신 잔을 직접 반납하고 간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당연한 것들이 너무나 낯설어졌다. 나는 더 이상 상파울로 소파에 눕듯이 앉아, 내게 기대어 잠드는 유라를 만날 수 없었다. 브라질엔 상파울로. 당연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너무도 괴로웠다. 당연한 것들이 더는 당연하지 않다는 건 어쩐지 서글펐다.

거리는 밝았다. 갈 곳을 잃은 우리는 한참을 목적지 없이 서성거리며 걸었다. 옷을 사려고 이곳저곳 기웃거려 보았지만 시간이 이른 탓에 마땅히 연 가게가 없었다. 주머니에 푹 찔러 넣은 봉투는 잔뜩 구겨져 갔다.

걸을수록 잠을 자지 못한 피로가 몰려왔고 눈이 감겼다. 잠이라도 깨야겠다 싶어, 한산한 대로변에 서서 담배를 꺼냈다. 불을 막 붙인 참이었다. 내가 불을 피우는 것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갑작스럽게 경찰차가 나타나더니 내 앞에 와 딱 섰다. 나는 입에 문 담배를 막, 두 모금쯤 피운 참이었다. 영문을 모르고 머뭇거리는 사이에 경찰복을 입은 남자가 내려 모리와 내 앞에 섰다.

길에서 담배 피우시면 안 돼요. 알 거 다 아시는 분들이. 성함이랑 주민번호요.
형님, 아침부터 고생이 너무 많으시다. 그럼요, 저희도 다 알죠. 아는데…. 죄송해요. 오늘 일이 있어서 속이 상하니까 다 아는 데도 막 그렇게 안 되네요. 지금 막 불 붙인 건데 끌 테니까 한 번만 봐 주시면 안 돼요?

모리는 담배를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나 대신 적극적으로 경찰과 대화를 나눴다. 아버지뻘은 되어 보이는데도 형님, 형님 하며 싹싹하게 굴었다. 그러자 경찰은 위아래로 우리를 훑어보았다. 위아래로 온통 까만 옷차림을 훑고는 내가 귀에 꽂은 국화에 잠시 시선이 머물렀다. 그리고는 모리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초범이신 것 같으니까…. 원래는 오만 원을 구청에 내셔야 하는데 사만 원으로 봐 드릴게요. 현금 있으세요?

모리는 내 옆구리를 쿡 찔렀다. 나는 어어, 하면서 주머니에 넣은 봉투를 꺼내어 경찰에게 건넸다. 그는 봉투를 흘끔 열고 돈을 세더니 사만 원을 가져갔다. 동전 몇 개가 들었을 뿐인 봉투는 내게로 돌아왔다. 그는 자신의 주머니에 돈을 찔러 넣고 자신이 타고 온 경찰차를 타고 순식간에 유유히 사라졌다. 내가 벙 쪄있는 사이, 모리는 이런 일이 익숙하다는 듯 말했다.

방금 뭐야?
뭐긴. 양아치한테 삥 뜯긴 거지. 요즘 저런 놈들 많어. 벌금 가지고 협박하는.
옷 사러 가기는 텄네.
밤샜더니 너무 졸리다. 일단 집 가서 좀 자자.

우리는 모리가 살고 있는 고시원으로 갔다. 모리는 식장에서 밤을 새웠고 나는 늦은 밤 날아든 부고 이후로 조금도 잠을 자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최근 월 육만 원을 더 내고 창이 있는 방으로 이사했다고 했다. 홍대에 있는 그 고시원에는 고시생이 몇 명이나 살고 있을까. 밤늦도록 불이 켜져 있는 방은 드물었다. 고시원 입구에는 ‘정숙’이라 쓰인 종이가 몇 년째 붙어 있었지만 그 건물은 언제나 소란스러웠다.

입주자 중 책을 펴고 공식이나 법률을 외우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이웃집에 다 들리도록 음악을 틀고 그림 작업을 하는 미대생이나 새벽이 다 되어서 친구들과 들어와 술판을 벌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외부인을 들이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었고 그럴만한 공간도 없었지만 고시원은 언제나 사람들로 복작이고 있었다. 서울 한복판에서 보증금 없이 몸을 누이기 위해서는 고시원 말고는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곳에서는 한두 살 나이 차이쯤은 너와 야, 로 퉁 쳐서 부르고는 했다. 너와 야로 묶인 사람들은 쉽게 돈독해졌다. 몇 호수에선 두 명이 살고 있었다. 주민들은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총무 앞에서 침묵했다.

이사를 했다지만 모리의 방은 그다지 바뀐 게 없었다. 창이 생겼다는 것 말고는. 방의 구조도 같았고 규모도 같았으며 심지어 너절한 옷가지들을 바닥에 늘어놓는 것까지 전부 똑같았다. 나는 익숙하게 침대로 몸을 던졌다. 그리고는 일인용 침대에 모로 누웠다. 모리도 불을 끄고는 이불 안으로 들어왔다.

침대 바깥으로 떨어지지 않으려 모리가 조심조심 모로 눕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벽을 바라본 채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숨을 크게 내쉬었다. 코끝이 시큰해졌다. 목울대가 크게 울리도록 침을 꼴깍 삼켰다. 등 너머의 모리는 몸을 웅크리고, 잘게 떨었다.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우리는 맞닿은 등이 온기로 축축해질 만큼 오래도록 잠을 잤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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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여대 소설창작론 ‘작가의 탄생’팀은 미래의 예비 작가 양성을 위해 “나 혼자 쓴다 – 웹소설 1억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지금은 웹소설 시대, 신춘문예의 계절 12월에 원고지대신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이번 테마는 ‘서울’. 서울이란 공간을 모티브로 서울에 사는 젊은이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희망을 쓰겠습니다.

-작가 이본느-

고양이 알러지가 있는 비극을 타고 났습니다. 이정도의 운명이면 어디에선가 주인공이 되어볼 법 한데, 아직 때는 오지 않은 것 같네요. 가장 잘 아는 것을 옮겨 적어야지, 하고 글로 적고 나면 너무나도 낯선 세계가 놓여 있습니다. 그 간극을 좁히는 일을 계속해서 해 나가고 싶습니다. 함께 쓰는 이들과 오래도록 동지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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