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여자 넷은 너무 많아 <1화>
[웹소설]여자 넷은 너무 많아 <1화>
  • 이벼리
    이벼리
  • 승인 2016.12.2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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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신여대 작가 양성 프로젝트

성신여대 소설창작론 ‘작가의 탄생’팀은 미래의 예비 작가 양성을 위해 “나 혼자 쓴다 – 웹소설 1억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지금은 웹소설 시대, 신춘문예의 계절 12월에 원고지대신 키보드를 두드립니다.
이번 테마는 ‘서울’. 서울이란 공간을 모티브로 서울에 사는 젊은이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희망을 쓰겠습니다.

이벼리

1. 오렌지빛 언덕길                                                                            

언덕은 끝이 없었다. 등 뒤로는 태양 빛이 따가웠다. 책이 잔뜩 든 가방은 중력의 건재함을 확인시켜줬다. 목엔 뜨끈한 땀이 흘렀다. 처음 와보는 동네. 처음 보는 사람들. 새로 개시한 반바지마저 너무 짧아 말썽이었다. 언덕을 올라가는 내내 위로 말려 올라가는 밑단을 부여잡는 일은 은근 성가셨다. 끓는 것 같은 아스팔트 언덕길을 오르고 있노라니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털썩 주저앉고 싶었지만 제자리에 서서 핸드폰 메시지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으로 헉헉대는 몸과 아직 조금은 남아있는 체면과의 합의를 보았다.

- 서울여자간호대학에서 마을버스 11번을 타. 그리고 포방공영주차장에 내려. 그러면 언덕 하나가 있거든? 그 언덕을 따라 쭉 올라오면 오른쪽에 계단이 있을 거야. 그 계단을 다 올라오면 또 언덕이 있어. 그 언덕에 이삿짐 차가 주차돼 있을 거야. 그럼 거기로 들어오면 돼.

학교에서 처음 메시지를 확인했을 땐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이사 당일에 앞으로 살 곳을 알게 되었지만 딱히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나는 두 시간 뒤 기말고사를 봐야했다.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집은 내게 그렇게 중요한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예의상 앞으로 살게 될 동네를 포털사이트에 검색해 보았다. 검색어를 입력하자마자 사이트는 그곳이 행정구역상 서대문구에 속하며 동쪽은 인왕산, 남쪽은 안산과 맞닿아 있다는 정보를 제공했다. 산과 맞닿은 동네라니. 공기는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그리고 난 네 시간 뒤 ‘산과 맞닿’았다는 표현의 실체를 확인한 것이다.

찾아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다. 학교에서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지하철을 타고 하루에 세 시간씩 통학하던 것을 생각해보면 버스 타고 새집으로 가는 것은 우스울 정도로 간단했다. 문제는 언덕이었다. 엄마의 메시지는 단순명료했다. 포방공영주차장 + 언덕 세 개 = 새집. 가는 길도 단순하긴 했다.

정류장에 내리니 20대 손님은 한 번도 받아본 일이 없었을 게 분명한 노가리 집과 주차장 사이에 언덕 하나가 보였다. 언덕 하나가 보였다기보다는 볼 수밖에 없었다. 도로의 색이 오렌지빛이었던 것이다. 왜 그 언덕만 오렌지색으로 칠해놨는지 모를 일이었다.

색깔이 아니어도 눈에 띌 수밖에 없는 경사였는데 말이다. 덕분에 30도가 넘는 날씨에 도로까지 불타고 있는 듯했다. 오렌지들을 신발 밑창 아래로 꾸역꾸역 밀어내다 보니 첫 번째 언덕이 끝나있었다. 아주 잠깐 평지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보니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런 계단은 드라마 속 가난한 여주인공의 집 앞에만 있는 줄 알았다. 현실에 존재할 줄은 정말 몰랐다. 시멘트 계단이었지만 시멘트라는 말 보다는 쎄멘이 더 어울렸다. 계단참의 간격도 제각각이었고 그 계단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본 집들은 더 가관이었다.

표면의 페인트가 바래다 못해 갈라져 떨어졌고 베란다 창은 샷시라는 개념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막을 찢는 황동색 철제 프레임에 반투명한 유리가 간신히 끼워져 있을 뿐이었다. 그곳에서 난 메시지를 확인한 것이다. 힘든 것도 힘든 것이었지만 정말 이곳이 맞는지 움직이지 않는 굳건한 글자로 확인해야 했다. 언덕을 따라 쭉 올라오다 오른편에 계단이 나왔으니 여기가 맞았다.

울고 싶었다. 집은 아파트만 있는 줄 알았다. 평지에 있는 건 너무나 당연했고. 그 계단에서 나는 서울의 위력을 확인했다. 지방 소도시의 평지는 서울의 비탈길이 된다는 단순하고 또 단단한 진리를 깨달았던 것이다.

계단 끝에 올라서자 살짝 왼쪽으로 이삿짐 트럭이 보였다. 세 번째 언덕이 시작되었지만 집에 대한 걱정으로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짐이 거의 다 옮겨졌는지 빈 노란 플라스틱 박스를 들고 철문 밖으로 나가는 아저씨들이 보였다. 다세대 주택이었다. 철문 안에 들어서자 왼쪽으로는 내 키의 두 배는 되는 옹벽이 있었다. 옆집이자 윗집과의 높이차는 언덕의 경사를 실감 나게 했다. 옹벽과 주택의 입구가 마주보고 있었고 내 정면에는 그 벽에 기대 담배를 태우는 엄마가 보였다.

“다녀왔습니다.”
“어 잘 찾아왔네?”
“응. 이사 다했나 봐?”
“짐은 다 들여놨고 청소하고 그래야지. 201호야.”
“알았어.”

말이 201호였지 아래층 101호가 반지하였기 때문에 1층이나 다름없었다. 현관을 열고 들어서니 작은 방 두 개와 큰 방 하나로 이루어진 구조가 들어왔다. 그래도 막상 들어선 집은 나쁘지 않았다. 올라오는 길에 보았던 집들에 면역이 되었기 때문이리라.

“아이고, 우리 민주 왔어? 오늘 시험은 잘 봤어?”

이모가 손에 걸레를 들고 안방에서 나왔다. 늘어진 티셔츠에 벙벙한 바지 차림이었다. 항상 거들까지 갖춰 입는 이모의 이런 모습은 무방비해 보였다. 엄마 옷을 빌려 입은 듯했다.

“뭐 그냥저냥 봤지.”
“넌 애가 뭐 맨날 그냥저냥 이래냐. 재미없게.”
“그냥저냥이 그냥저냥이지 뭐. 내 방은 어디야?”
“응 저기 안쪽 방. 들어가서 정리 좀 하고 다 했으면 나와서 이모 좀 도와. 알았지?”
“어어.”

대학 진학 후 가족 모두가 같이 서울로 이사 오느라 집은 확실히 작아졌다. 그리고 정사각형이 되었다. 작은 박스같았다. 아직 땀이 마르지 않아 가방만 던져둔 채 다시 밖으로 나갔다.

엄마는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순간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산바람이었다. 아까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벽에 기대섰다. 눈높이보다 좀 더 위에 내 방 창문이 보였다.

창문 안쪽으로 익숙한 가구들이 보였고, 그제야 좀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노가리, 오렌지빛 언덕길, 땀, 가쁜 숨소리, 약간의 경계심과 초조함, 산바람, 새집, 쎄멘, 정사각형, 옹벽. 스무 살 여름의 홍제동은 그런 모습이었다.   (다음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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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벼리 -

초여름에 태어났다. 누군가에게 읽힐만한, 누군가 읽고 싶어할만한 글을 쓰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을 통해 밥 벌어먹고 사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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