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예린의 동물예찬] 우리는 돼지의 울부짖음을 알고 있는가?
[곽예린의 동물예찬] 우리는 돼지의 울부짖음을 알고 있는가?
  • 곽예린
    곽예린
  • 승인 2016.08.22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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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신문=파이낸스투데이] “도축 과정에서 돼지의 배를 갈라보면 폐가 다 녹아있다고 한다. 돼지들의 후각은 개들보다 훨씬 예민하다. 그런 그들이 살아생전 느끼는 괴로움은 어떨지 짐작이나 되는가?”

동물애호가의 도덕 범주에는 돼지가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개의 경우는 돼지와 다르게 인식된다. 개들이 잔인하고 비위생적으로 도축되어 개고기로 취급되는 것, 개별적으로 이루어지는 ‘개 학대 사건’은 비난과 혐오의 대상이다. 최근에는 동물 관련 방송 프로그램과 동물단체의 폭로로 강아지 공장에 대한 진실이 세상에 드러났고, 이를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인간의 오랜 친구인 개가 정당하지 않은 대우를 받는 일로 인해 세상이 시끄러워지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분개하지만 우리는 같은 동물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돼지를 먹는다. 동물애호가로 통하는 유명인사들과 많은 사람이 앞다투어 ‘개를 잔인하게 다루는 것’을 비난하지만, 이는 편협한 동정심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존재가 고통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왜 돼지에게는 닿지 않는 것일까?

돼지와 개를 생각하는 감정은 과연 다른 것일까? 대부분 동물애호가는 애호의 대상을 개와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로 한정 짓고 그 이름은 사랑과 관용의 상징으로 통한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으로 동물을 ‘애호’하는 것이 맞는가? 그들이 생각하는 동물의 범주는 왜 반려, 혹은 애완동물에서 그치는가? 인간의 이익을 위해 희생되는 동물은 개뿐만이 아니다. 싸고 맛있는 고기가 되기 위해 희생되는 다른 동물들의 고통은 왜 보이지 않는 것일까? 대부분의 동물애호가가 가진 이중적인 잣대 너머에는 개가 겪는 고통만큼 극심한 고통을 겪는 돼지도 있다.

어느 날, 개인 작업에 쓸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돼지 축사에 간 적이 있었다. 호기심이 상당한 돼지들은 낯선 이의 방문을 궁금해했고 내가 손을 뻗자 몇몇 돼지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반짝이는 두 눈으로 나를 관찰했고 내 냄새를 맡기도 했다. 하지만 신기하고 반가운 마음은 찰나였다. 좁은 공간에 여러 마리가 뒤엉킨 채 울부짖는 소리가 나의 마음을 긁었다. 진흙 목욕은 고사하고 빛도 들지 않고, 바람도 통하지 않는 축사는 암모니아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숨을 쉴 때마다 코가 짓무를 것만 같았다. 집에 돌아와 샤워 하고 빨래를 해도 온 몸에 밴 냄새가 쉽게 가시지 않을 정도였다. 도축 과정에서 돼지의 배를 갈라보면 폐가 다 녹아있다고 한다. 돼지들의 후각은 개들보다 훨씬 예민하다. 그런 그들이 살아생전 느끼는 괴로움은 어떨지 짐작이나 되는가?

나는 고작 30분을 머무르고도 고통스러웠지만 평생을 고통 속에서 축사에 갇혀 사는 돼지들의 생은 얼마나 불행한 것인지! 강아지 공장의 개들과 고기 공장의 돼지들. 그들은 하나같이 불안에 떨고 있었다. 자연스러운 욕구도 해소할 수 없고,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환경에서 즐거움이 배제된 삶, 고통의 점철을 바라보며 나는 같은 분노와 슬픔, 그리고 연민을 느꼈다.

강아지 공장의 개들이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것처럼 돼지들도 그랬다. 우리의 욕망에 갇혀 제 본능대로 살지 못하는 돼지 중 정말 행복해 보이는 돼지는 단 한 마리도 없었다. 동물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나는 그들이 개를 사랑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조금만 더 넓은 시각으로 동물을 바라볼 수는 없을까? 개의 고통과 돼지의 고통은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의 동물보호법이 개와 돼지를 각각 동물과 가축으로 규정하고 있다고 해도, 고통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개를 먹는 것과 돼지를 먹는 것 또한 다르지 않다. 진정으로 사랑과 관용의 상징이 되고 싶다면 눈앞에 보이지 않는 고통에도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사진 영상 작업을 통해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고, 일곱살 때 할아버지가 사시는 시골 동네에서 돼지 잡는 장면을 목격한 뒤로부터 동물에 대해 연민을 품어왔다.

미국인 친구 크레이그와 철학자 피터 싱어의 영향으로 채식을 시작한지 3년이 지났다.

동물보호단체와 꾸준히 접촉하며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동물이 겪는 고통은 우리의 도덕성을 비추는 거울이며 이는 지구 환경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따라서 동물해방이 곧 인간해방이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글, 사진 곽예린 www.yerin.kr / yenney89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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