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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천벽력의 비보...이광종은 직무수행상 득병했다.
 大macho
 2015-02-06 11:40:44  |   조회: 7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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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에 급제동이 걸린 이광종 감독의 와병은 앞으로 심각한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다. 주축선수 몇명 빠진 것 정도와는 비교가 안 되는 심대한 손실이다. 컴퓨터로 말하면 CPU가 고장난 것에 비유할 수 있는 최악의 상태다. CPU는 양산이 가능하지만 축구팀의 감독은 역사상 1번만 생산되는 존재이기에 이는 비교불가능한 재앙이다.

 
일단 이광종 감독의 쾌유를 빌어마지 않는다. 훌륭한 개인이었으며 뛰어난 팀 경영능력의 소유자다. 이런 인물이 한국 축구에 있다는 것 자체가 한국에 내려진 축복이다. 아시안게임, 누가 보면 당연한 줄 아는 그 대회에서 한국은 무려 28년 동안이나 결승에도 오르지 못했는데 이광종은 보란듯이 7경기 무실점으로 우승했다. 엔트리 20명 중 김신욱과 윤일록이라는 핵심자원 2명을 대회 초반에 잃고 18명만으로 7경기를 수행하는 중에 선수 전원을 투입해가며 큰 기복없이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는 것이 감독이 얼마나 유능한 인물임을 역증한다. 선수를 고를 때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읽었다는 뜻이다.
 
제대로 된 회사는 직원이 직무수행 중 입은 사상에 대하여, 근로기준법 이상을 적용해 예우한다. 이광종은 축구협회가 관리하는 8개의 팀/상품생산부서 중에서 넘버2의 비중을 책임진 부서장 역할을 100% 완수하며 복무하였다. 협회는 이광종이 완쾌될 때까지 모든 치료비를 부담해야하며 그의 가족이 생계에 지장이 없도록 지원을 다해야 마땅하다. 올림픽 팀이 얼마나 중요한 팀인가는 시청률이 입증하지 않는가. KFA의 스폰서들이 어떤 팀을 바라보고 연간 수억~수백억의 협찬을 감행하는지 다져보면 알 수 있다. 단언컨데 한국 올림픽팀이 아시아지역예선을 돌파하여 본선에 나가지 못하면 스폰서들은 지원을 재고하게 될 것이다.
 
내가 10대 소년이던 1971년 죽어도 잊지 못할 사건이 지금은 없어진 동대문운동장에서 일어났다. 당시에는 서울운동장이라고 부르던 스타디엄이었다. 국가대표팀을 2분하여 청룡과 백호로 칭하던 그 시절, 서울에서 1972 뮌헨올림픽 아시아지역예선이 벌어졌던 것이다. 참가국은 한국 외에 일본 말레이시아 대만 필리핀 등 5개 국가대표팀. 1988 서울올림픽까지 올림픽 축구는 연령제한 없는 국가대표A팀이 출전하는 지구촌 특급 축구대회였다. 이 때문에 아시안컵보다 2년 터울로 찾아오는 올림픽 월드컵 아시아지역예선에 온 국민이 열광했던 것이다. 본선에 나가는 것 자체가 국경일에 준하는, 정치적 의미와 비중조차 심중한 사건이었다. 아시안컵 본선의 주목도는 아시안게임만도 못했던 것이 1990년 이전의 사정이다.
 
뮌헨올림픽 아시아지역예선은 아시아를 3개조로 분리하여 시행했는데 각조 1위가 서독행 비행기에오르는 것으로 서울에서 열린 1조 예선은 축구하기 좋은 9월에 킥오프되었다. 온 국민의 시선과 청각이 한국vs말레이시아 전에 쏠렸다. 그날은 경기 시작 전부터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려 조짐이 불길했지만 한국은 말레이시아 정도는 가볍게 이기고 일본만 꺾으면 대망의 올림픽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야심으로 이 경기에 나섰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던 일본대표팀에는 GK 요코야마 FW 가마모토 스기야마 DF 오기 MF 모리 등 동메달리스트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181cm의 가마모토는 초아시아급 스트라이커였고 100m11초에 달리는 스기야마는 무시무시한 윙어였다. 178cm의 오기 역시 뛰어난 센터백이었다. 평균신장도 172cm의 일본이 171cm의 청룡보다 우위에 있었다. 한국에서는 176cm의 김호가 가장 큰 키였다. 문제는 그 막강한 일본이 라운드로빈 1차전에서 말레이시아에게 0-3으로 대패했다는 것이이었다. 일본을 상대로 압승한 말레이시아의 전력에 당연히 경계심을 가져야 마땅했지만 한국대표팀에는 경계심보다 말레이시아쯤이야라는 낙관이 더 승했다.
 
경기 결과는 뜻밖에도 한국의 0-1 패배였다. 한국은 27개의 슛을 난사하고 18개의 코너킥을 얻었지만 단 1골도 얻지 못했다. 말레이시아는 단 2개의 슛팅 중에 1개를 골로 연결시켜 한국을 제압했다. 나는 그 경기보다 더 허망한 시합을 본 적이 없다. 비슷했던 양상이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준결승 우즈베키스탄 전이었는데, 원통함은 1971년 때에 비해 덜했던 기억이다. 아시안게임은 1998년 방콕대회까지 연령 제한 없이 참가하였고, 1994년 대회는 미국월드컵에서 패기를 과시한 한국국가대표팀 멤버 그대로 참가했기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1986년 서울 잠실에서 이 대회 우승을 한 바 있어 한풀이는 한 셈이라 생각된다.
 
말레이시아의 결승골 장면은 지금도 나의 뇌리에 박혀 고스란히 재생된다. 후반 20분경 한국 오른쪽 측면을 파고든 류륜텍이 박병주를 제치고 코너플랙 앞쪽에서 크로스 이 볼을 타이밍 좋게 뛰어든 사이드 아마드가 이마로 밀어넣어 순식간에 결정지었다. 폭군이라 불렸던 GK 이세연도, 최강의 수비콤비라던 김호 김정남도 멀건히 바라만 보았던 헤딩슛이었다. TV가 대도시를 중심으로 막 보급되던 그 시절,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고 그 순간 이후 동점골을 넣기위한 한국팀의 필사적인 노력이 물거품이 되자 다들 망연자실 통곡의 바다였다. 어린 나는 그 때처럼 분했던 기억이 따로 없다.
 
, 얄밉도록 영리하고 민첩했던 말레이시아 선수들! GK 웡캄훅 DF 찬드란,소친온,살레 이브라힘 MF 나멧 압둘라, 크리슈나사미,류륜텍 FW 사이드 아마드...잊지못할 불구대천 원수의 이름들이다. 한국이 얼마나 우세한 경기였냐면 전반전에 최후방의 스위퍼 김정남이 드리블로 말레이시아 박스까지 몰고들어갈 정도였다. 패한 한국팀에게 가해진 국민적 분노는 지금 세대는 상상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 경기를 사촌형과 함께 현장에서 지켜본 나는, 대표팀이 어이없이 패하자 떼굴떼굴 구르며 축구협회 해체하라! 책임져라! 외치던 빨간 셔츠 입은 청년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대표선수들은 말 그대로 죄인들이었다. 한국팀 감독 한홍기는 공개사과로도 부족해 축구계 은퇴를 선언할 정도였다. 장덕진 당시 축구협회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 또한 공개사과했다. 수중전의 덕을 단단히 보았던 말레이시아는 그 경기 이후 홈에서 한국만 만나면 비가 안 와도 그라운드가 흥건해질 정도로 물을 뿌렸다. 한국이 국제무대에서 말레이시아라는 덫에서 확실히 벗어나기까지에는 10년 이상 더 기다려야 했다. 내 기억으로 말레이시아 대표팀이 한국을 이기지 못한 것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아시아지역예선에서 완패한 이후부터였다. 그 전까지는 엎치락 뒤치락 하던 사이가 한국과 말레이시아다. 그들의 교활한 전술은 지금 중동 침대축구는 양반이라고 할 정도였다. 그만큼 양국의 스타일은 극과 극으로 판이했다.
 
내가 긴 회고를 하는 이유는 그 때의 상황이 이제 한달 여 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재현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수중전이 어색한 1971년 당시의 대표팀 청룡 못지않게 1993.1.1 이후 출생자들로 구성된 현 U-22팀 역시 겔로라 붕카르노의 적대적 열기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감독이 튼튼하게 버텨주며 선수들을 추스리면서 인도네시아를 예의분석하고 힘있게 대처해도 어려운 것이 자타르타 원정이다. 1996L.A 올림픽 예선 때가 기억난다. 당시 자카르타로 원정을 갔던 비쇼베츠호는 10만석을 꽉 채운 미친 관중들이, 선수들이 입장할 때부터 어린애 머리통만한 돌덩어리와 똥오줌 음식물 쓰레기로 가득찬 비닐봉지를 수류탄 날리듯 투척했던 것이다. 심지어 생닭을 가져와 던지던 자도 있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현재 전북현대의 코치 박충균 선수에게 직접 들었다.
 
당시 올림픽팀은 GK 이운재 서동명이 주전경쟁을 하던 가운데 DF 이민성 김상훈 조(이름이 가물거림) 이기형 박충균 MF 조현두 최윤열 윤정환 최성용 FW 최용수 이우영 우성용 등이 나섰는데, 비쇼베츠는 키 큰 선수들을 선호해 평균신장이 180cm를 훌쩍 넘는, 그리고 개개인의 기량에 있어서도 아시아 최강을 자부할 수 있는 좋은 전력이었다. 그런 선수들이 인도네시아를 2-1로 제압하고도 라커룸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센터서클에 모여서 상황이 사그러들 때까지 기다려야 했던 것이 겔로라 붕카르노의 미친 열기였던 것이다. 한 마디로 살기등등한 것이 인도네시아 원정이다. 그 때는 세나얀이라 부르던 겔로라 붕카르노 스타디엄은 60년대에 건축되었을 때 12만명을 수용했지만 관중석 대부분에 의자가 깔린 현재 8.8만이 앉을 수 있고 입석까지 포함하면 10만명이 들어차, 아시아에서 가장 거대한 축구장이다.
 
인도네시아는 2013년 열린 AFC U-19 지역예선에서 한국을 3-2로 누른 바 있어 이번 올림픽 지역예선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있을 것이다. 그 때도 억수로 비가 내려 30분간 경기가 중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네시아인들이 이 경기에 얼마나 감복했던지 지금도 골 장면과 HL가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 H조 경기가 열리는 2014.3.27~3.31 자카르타는 우기의 끝자락(3월 평균 강우 220mm)이며 한 달의 절반 이상 비가 내린다. 비 안 오는 때는 하루에 7시간 정도라니 수중전을 각오하지 안으면 안 된다. 기온은 25~32도 습도는 80% 이상이다. 태국 원정 다녀온 한국 선수들은 쌀쌀하고 건조한 모국의 기후와 판이한 한여름 장마철 고온다습 환경에서 컨디션 유지가 쉽지 않을 것이다.
 
신태용 신임 U-22 감독은 이 절박한 원정을 대비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선수 파악이야 어찌어찌 한다고 해도, 선수단 전원이 자카르타는 생소한 곳이다. 오늘은 금요일, 내일 태국과 경기를 마치면 322일에나 소집할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시기에 감독이 몸져누워 팀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단 말인가.
 
축구협회와 기술위원회는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 자카르타의 현지 사정과 겔로라 붕카르노의 잔디상태를 확인하고 인도네시아 U-22 팀의 전력 파악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H조에는 인도네시아 외에도 브루네이와 동티모르가 편성되어 있는데, 우리 팀은 3.27 브루네이, 3.29 동티모르와 1,2차전을 갖고 3.31 오후 8시에 인도네시아와 마지막 경기를 갖는 것으로 되어있다. 듣기로 동티모르에는 한국인이 유소년지도자로 있다고 하니, 그분을 통해 인도네시아 U-22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동티모르는 2002년 이전까지 인도네시아의 일부였고 지금도 인도네시아와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련이 있는 나라다. 현재 동티모르 U-22팀 감독은 온두라스 출신 Oscar Lagos로 위키피디아에 나와있다.
 
H조 경기는 가능한 모든 변수를 상정하여 대비해야 할 것이다. 절대로 자만해서는 안 된다. 인도네시아에게 비길 경우 조 110개팀과 조 2위 상위 5개팀이 내년 1월에 열리는 제 2AFC U-23/Qatar에 출전하기 때문에 동티모르 브루네이를 상대로 다득점까지 계산해야 한다. 인도네시아에 질 경우 조 2위가 된다해도 본선 진출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른 조의 상황을 보면 오만 바레인 쿠웨이트 예멘 시리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이 조 1위 후보팀들보다는 전력이 덜하지만 충분히 조 2위로서 경쟁력이 있고, 특히 C조의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G조의 북한과 태국은 누가 조 1위를 차지하건 조 2위로서 본선에 올라갈 실력이 있다. 인도네시아에 패하면 그대로 끝장이며 조 2위가 되어 2016 AFC U-22에 나갈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킹스컵에서 본 U-22의 전력은 그저그런 수준이다. 특히 골결정력이 부실하다. 이건 대표A팀도 마찬가지지만 U-22 역시 기대했던 김승준과 김현 문창진 등의 슛팅은 아직 위력이 없다. 우즈벡전에서는 수비수 송주훈이 결승골을 넣었고 온두라스전에서는 미드필더인 이창민과 이우혁이 득점했다. 득점할 위치에 있는 선수들이 골을 넣지 못한다는 것은 문제가 크다. U-22팀에 K리그에 몸담고 있는 선수는 16(올해 입단 포함)이고 현역 대학생이 2, J리그에서 뛰는 선수가 3명이다. 이 자원으로 3월의 지역예선을 대비할 수는 없고 킹스컵이 끝나는대로 2013 FIFA U-20 월드컵 8강 멤버들을 포함한 자원들 중 국내파로서 동원 가능한 선수들을 모아 신태용 감독이 정선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 J리거들은 322일이나 되어야 소집이 가능할 것이니 축구협회는 프로연맹 선수들의 소속팀 대학축구연맹과 긴밀히 협조하여 최대한 훈련시간을 확보해 주어야 한다
2015-02-06 11:4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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